[사설] 국정원장의 한·미 훈련 유연 대응 공개주문 부적절하다

입력 2021-08-05 04:03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한·미 훈련의 중요성을 이해하지만,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압박한 데 대해 훈련 연기론에 힘을 실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 남북 통신연락선의 복원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고, 북한이 북·미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광물 수출과 정제유 및 생필품 수입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구체적 정책에 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 한·미 연합훈련은 대북 영향뿐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나 한·미동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다. 정보기관 수장이 치고 나오듯 불쑥 입장을 표명하는 건 온당치 않다. 특히 이 문제는 여당 내에서도 국가 주권과 관련된 만큼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논란이 뜨거운 사안이다.

이번 정보위는 전날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최대한 이른 시간에 열린 것으로 전해진다. 하태경 야당 정보위 간사는 “주요 메시지가 한·미 훈련에 관한 국정원 입장을 밝히는 것이었다”며 “국정원이 김여정의 하명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당시 실무를 총괄했던 박 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소신을 가진 것은 이해한다. 임명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움직여 나갈 소명”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보기관이 정부 정책이나 정치 사안에 공공연히 개입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국정원이 특정 방향에 경도될 경우 정보가 왜곡될 우려도 있다. 박 원장 발언 직후 통일부는 남북 통신선 복원이 어느 일방의 요청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외교부도 관련 품목의 제재 완화를 한·미 간에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정부 부처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외교·안보 부서와 엇박자를 내는 모습은 국민을 불안케 한다. 자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