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리골레토’ 등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베르디를 최고의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이자 민족 영웅으로 만든 출발점은 세 번째 작품인 ‘나부코’.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12~1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나부코’를 이탈리아 출신 스테파노 포다의 연출로 16년 만에 선보인다.
1842년 초연된 ‘나부코’는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유대인을 포로로 삼은 ‘바빌론 유수’가 배경이다. 바빌론의 나부코 왕과 두 딸 아비가일레와 페네나, 유다의 장군 이즈마엘레 사이의 사랑과 갈등이 핵심 줄거리다. 베르디는 26살이던 1839년 데뷔작 ‘오베르토’가 호평받았지만, 이듬해 어린 딸과 아들에 이어 아내까지 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두 번째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마저 실패하자 음악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베르디의 재능을 아낀 라 스칼라 극장장이 그에게 ‘나부코’ 작곡을 권유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나부코’는 이탈리아인들을 열광시켰다. 당시 이탈리아가 통일되지 못한 데다 북부는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어서 이탈리아인들은 유대 민족을 자신과 동일시했다. 합창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통일 전 이탈리아의 국가(國歌)로 불렸다.
대규모 출연진이 나오는 ‘나부코’는 스케일 때문에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못했다. 국립오페라단도 2005년 프랑스 출신의 다니엘 브누앙 연출로 선보인 게 마지막이었다.
이번에 연출을 맡은 포다는 ‘아름답고 상징적인 무대 미장센’으로 유명하다. 1994년 데뷔한 그는 연출은 물론 안무 세트 의상 조명까지 도맡아 한다.
포다는 지난달 29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나부코’는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데뷔 이듬해인 1995년 포르투갈 리스본 오페라의 시즌 개막작으로 ‘나부코’를 연출하면서 국제적으로 내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3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극장에서 ‘나부코’를 공연하려 했으나 개막 직전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됐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러시아 볼쇼이극장의 ‘토스카’를 제외하곤 모든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돼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한국의 국립오페라단에서 연출 의뢰가 와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포다는 국립오페라단에서 2015년 ‘안드레아 셰니에’와 2017년 ‘보리스 고두노프’를 연출한 적이 있다. 당시 화려하고 고풍적인 무대 세트와 의상 등을 바탕으로 상징적 이미지를 펼쳐 오페라 애호가들의 환호를 받았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세 번째 연출인 ‘나부코’ 역시 올해 국내 오페라계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힌다.
‘나부코’는 극 중 바빌론과 유대의 관계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연출이 유난히 많다. 2005년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역시 배경을 20세기 나치 점령기 유럽의 ‘게토’(강제 유대인 거주지)로 옮긴 뒤 유대인이 그 안에서 ‘나부코’를 상연하는 극 중 극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포다는 정치적 해석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예술은 정치가 아닙니다. 오페라를 정치적 해석의 틀로 풀어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게다가 ‘나부코’는 단순히 선한 민족과 악한 민족 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희망 회개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코로나 팬데믹도 포다의 ‘나부코’ 연출에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극장이 폐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더 본질적인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장과 오페라, 음악을 더 본질적이고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화려하게 만든 아르헨티나 ‘나부코’와 달리 한국 ‘나부코’는 본질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포다가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를 준비하면서 떠올린 것은 한국의 ‘한’(恨)이다. 2015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알게 된 ‘한’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포다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 디자인에 한글과 격자무늬 등 한국적 패턴을 반영했다.
“제가 직관적으로 느낀 ‘한’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서 생긴 상처를 극복하려는 정서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는 베르디가 ‘나부코’를 작곡하면서 느낀 감정과도 연결됩니다.”
국립오페라단 ‘나부코’에는 나부코 역에 바리톤 고성현과 정승기, 여주인공 아비가일레 역에 소프라노 문수진과 박현주 등이 출연한다.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을 이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