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워’ 미국 대통령의 힘과 한계 솔직하게 회고

입력 2021-08-05 20:07

오바마의 회고록이 아니라면 900쪽에 달하는 책 ‘약속의 땅’을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내용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오바마의 회고록은 특별한 기대를 품게 한다. 전에 출간한 ‘담대한 희망’과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거듭 입증했듯이 오바마는 뛰어난 작가다. 솔직하고 우아하게 쓴다.

오바마의 책에는 회고록이라는 장르가 풍기는 장황하고 고리타분한 분위기가 없다. 회고록은 통상 대통령이란 자리를 신화화하는 데 기여하지만 오바마의 책은 그 신화를 적극적으로 해체한다. 그는 서문에서 “미국 대통령에 대해 독자들이 감을 잡게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불완전하고 흔들리고 후회하는 대통령을 보여준다. 국제사회에서 미국 대통령이 지닌 어마어마한 힘과 함께 한계도 솔직하게 얘기한다.

오바마는 퇴임 직후 회고록 쓰기에 착수해 3년 만에 탈고했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출간된 오바마 회고록은 두 권으로 구성됐고, 이번에 국내 출간된 ‘약속의 땅’은 그중 1권이다. 1권은 오바마의 대통령 첫 임기 2년 반까지를 다룬다. 앞부분에는 오바마의 성장기와 대학시절, 미셸을 만나 결혼한 이야기,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 등이 담겼다. 뒤로 가면서 백악관 얘기가 펼쳐진다. 세계 금융위기와 씨름하고 ‘오바마케어’를 통과시키고,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등 역사적 순간의 현장 분위기와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오바마 회고록에선 지금도 많은 미국인이 사랑하는 오바마 정치의 핵심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고 다듬어졌는지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을 움직이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법, 풀뿌리운동과 정치의 관계, 절망적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희망과 믿음을 갖는 이유, 청년세대의 의미 등에 대한 오바마의 독창적이고 사려 깊은 생각을 만날 수 있다. 오바마는 개인적으로 이상주의자였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혁명가가 아니라 개혁가였다.

“나는 언제나 이념을 추구하면서 삶을 기꺼이 희생했지만 수많은 사람의 행복을 걸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혁명가가 아니라 개혁가였고, 이상까지 그런지는 몰라도 기질적으로는 보수적이었다.… 내가 보여준 것이 지혜인지 나약함인지는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것이다.”

오바마 회고록은 대통령 회고록 중 최고 판매 기록을 세우고 있다. 26개 언어로 번역 출간 계약을 했고 세계적으로 600만권 가까이 팔렸다.

김남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