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대학생이 그려낸 ‘최애의 세계’… 뜨겁고 애절한

입력 2021-08-05 20:07
우사미 린은 1999년 생으로 현재 대학생이다. 대학교 1학년이던 2019년 ‘가카(엄마)’로 데뷔했고, 이 소설로 미시마 유키오상 최연소 수상자가 됐다. 그의 두 번째 소설 ‘최애, 타오르다(일본어 원제는 ‘오시, 모유’)’는 지난해 출간돼 아쿠타가와상 수상과 50만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지금은 세 번째 작품을 쓰고 있다. 미디어창비 제공

‘최애, 타오르다’는 남성 아이돌 멤버를 응원하는 일을 자신의 ‘뼈대’이자 ‘생업’이라 말하는 극성팬 소녀의 이야기다. “최애가 불타버렸다”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최애’는 ‘최고로 애정한다’의 줄임말로 아이돌 그룹이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가장 좋아하는 멤버나 캐릭터를 뜻한다. ‘타오르다’는 온라인에서 비난이나 비판 등이 거세게 일어 논란의 대상이 됐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최애가 불타버린 이유는 다음 문장에 곧바로 나온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소설은 최애를 응원하는 것 외엔 삶의 의지를 찾지 못하는 여고생이 폭력 논란과 연예계 은퇴로 최애를 잃게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통증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끝나는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귀엽고 대단하고 사랑스러운데 끝난다.… 그러지 말아줘, 내게서 척추를 빼앗아가지 마. 최애가 사라지면 나는 정말로 살아갈 수 없다. 나는 나를 나라고 인정하지 못한다.”

소설은 화면 속 존재이자 일방향적 사랑의 대상인 최애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부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여고생 주인공 아카리는 몸도 마음도 취약하다. 학교에선 부적응자이고 가정에선 걱정거리다. 학업도 취업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최애를 위해선 몸을 깎아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 최애의 앨범과 굿즈를 사고 콘서트에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블로그에 최애에 대한 글을 열심히 쓴다.

아카리에게 최애가 왜 그토록 중요한 존재가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학교에서, 집에서, 일하는 음식점에서도 힘겨워하는 아카리는 “최애를 응원할 때만 이 무게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고백한다. 피터팬을 연기하는 최애를 보며 “무게를 짊어지고 어른이 되는 것을 괴롭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누군가가 힘주어 말해준 것 같았다”고 느낀 순간, 그는 최애의 세계로 탈주했다.

그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현실 세계와 달리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혹은 무대와 객석에는 그 간격만큼의 다정함이 있다. 일정한 간격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끝없이 느끼는 것이 평온함을 주기도 한다.” 최애로 맺어진 팬들의 관계 속에서 “반쯤 픽션인 나로 참여하는 세계는 따스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공부나 취업에 몰두하지 못하지만 “온 힘을 쏟아 빠져들 대상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최애가 가르쳐주었다.” 아카리는 “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했다”고 말한다.


‘최애, 타오르다’는 올 상반기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다. 일본어 제목은 ‘오시, 모유’로 지난해 여름 문예지에 발표된 후 SNS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책으로 출간돼 지금까지 50만부가 팔렸다. 지난 1월에는 일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작가는 1999년생으로 21세 대학생인 우사미 린이다. 그는 재작년 대학 1학년 때 엄마와 딸의 애증을 그린 소설 ‘가카(엄마)’로 문예상과 미시마유키오상을 수상했다.

‘최애, 타오르다’는 우사미 린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는 특정 인물이나 분야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덕질’과 ‘덕후’의 세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이들의 심리를 깊게 파헤친다. 특히 최애가 젊은이들의 취미나 문화 정도가 아니라 삶의 불안정과 무의미를 견디고 자신을 찾아가는 청춘의 한 존재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직 최애에 애착하면서 현실 세계의 짙은 어둠을 통과해나가는 소녀의 모습은 눈물겹다.

최애가 사라진 후 아카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어떤 방향을 암시한다. 은퇴한 최애를 찾아 그가 사는 맨션까지 갔다가 돌아온 아카리는 최애의 흔적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방이 전부 살색으로, 육체의 색으로 물든 것을 느낀다. 그는 면봉이 든 플라스틱 케이스를 있는 힘껏 바닥으로 내리친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바닥에 어지른 면봉을 줍는다.

“기어 다니면서, 이게 내가 사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족보행은 맞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겠다. 몸이 무겁다. 면봉을 주웠다.”

“살아야겠다”는 말이 무엇보다 반갑다. 이족보행 말고 기어 다니면서 살아가는 방법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