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겼어야 했는데…” 끝내 눈물 쏟은 열일곱 탁구요정

입력 2021-08-04 04:03
신유빈이 3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탁구 단체전 8강 독일과의 경기에서 서브를 넣기 위해 볼에 집중하고 있다. 신유빈은 이날 전지희와 함께 1복식에서 승리했지만 4단식에서 아쉽게 패했다. 뉴시스

‘탁구 요정’ 신유빈(17·대한항공)은 3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단체전 8강에서 패한 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매 게임 최선을 다했지만 노련한 독일 선수들에게 한 발짝 못 미쳐 첫 올림픽 도전에서 노메달에 그쳤기 때문이다.

신유빈은 이날 전지희(29·포스코에너지)와 짝을 이룬 1복식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이며 독일 선수들의 기선을 제압했다. 하지만 한국이 2-1로 리드한 4단식에서 2016 리우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한잉(38)의 수비형 탁구에 휘말려 결국 한국의 2대 3 패배를 막지 못했다. 신유빈은 울먹이며 “제가 단식에서 이겨 (상대 기세를) 끊었어야 했는데 못 잡아서 언니들에게 많이 미안하다”며 “나라를 대표해서 나와 책임감이 더 컸는데 성적으로 보답하지 못했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아직 17세에 불과한 신유빈이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 보인 무대였다. 세계적인 강자들을 상대로도 기죽지 않고 매 경기 성장했던 신유빈의 모습은 많은 응원과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날도 경기 중 팔꿈치가 쓸려 피가 나는 가운데서도 한잉의 플레이에 금세 적응해 기어코 한 세트를 따내는 투지를 보여줬다. 팀의 ‘맏언니’ 전지희는 “유빈이가 올림픽이 처음이다 보니 경험이 부족하긴 했지만 복식을 할 때도 그렇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굉장히 잘 해냈다”고 칭찬했다.

신유빈은 이번 대회에서 유독 특별한 상대들을 만났다. 단식 2회전에선 니시아리안(58·룩셈부르크)의 노련함을 패기로 극복하며 4대 3 역전승을 거뒀다. 단체전 16강에선 한쪽 팔이 없는 나탈리아 파르티카(32·폴란드)가 속한 조와 접전 끝에 승리를 따냈다. 그리고 이날 비록 졌지만 한국에선 보기 드문 수비형 탁구도 경험했다. 이 모든 게 더 큰 성장을 위한 자산이다.

신유빈은 “계속 까다로운 선수들과 경기해 게임이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며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귀국하면 더 연습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탁구선수 출신인 아버지 신수현(49)씨는 원래 긴장돼서 딸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경기를 챙겨봤다고 했다. 신씨는 “유빈이가 게임을 하면서 계속 성장하는 걸 느꼈다. 주눅 들지 않고 자기 할 걸 다 하는 모습이 제게 믿음을 줬다”며 “유빈이가 돌아오면 고생했다고 격려하고 먹고 싶다는 마시멜로를 고기와 함께 구워줄 것”이라고 대견해했다.

신씨는 대회가 끝난 뒤 제주도 가족여행을 가기로 딸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신유빈이 쉴 틈도 없이 오는 17일 세계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신씨는 “유빈이가 실망이 클 텐데… 갑자기 시합이 잡혔다”며 “유빈이가 소식을 듣고 아빠한테 성질낼지도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유빈이가 인스타그램 팔로어 3만명이 목표였는데 대회를 치르고 11만명이 넘었다. 유빈이가 그거 하나로도 좋아할 것”이라며 “유빈이는 관심을 좋아하는데, 국민 여러분께서 많은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도쿄=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