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곰배령, 천상의 화원 뒤질세라 꽃망울, 수줍은 그리움이 핀다

입력 2021-08-04 20:45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곰배령을 드론으로 내려다본 모습. 가운데 나무데크 길 주변으로 야생화가 지천이다. 뒤 높은 봉우리가 작은점봉산이고 그 오른쪽으로 점봉산이 이어진다.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 보는 점봉산(1424m)은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존지역이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의 북방 한계선과 남방 한계선이 만나는 지점으로,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사람의 발길도 드물어 원시의 생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자리한 ‘천상의 화원’ 곰배령(1164m)은 야생화 천국이다. 점봉산 입산은 금지돼 있지만 강선계곡부터 곰배령까지 생태 탐방 구간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들꽃을 만날 수 있다.

탐방 출발점은 ‘신선이 내려와 놀고 간다’는 강선계곡 입구에 자리한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다. 출입증을 받고 탐방을 시작한다. 안내원은 따로 없고 정해진 탐방로를 따라 오른다. 곰배령 정상과 가까운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비교적 완만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강선계곡 물소리를 ‘백색 소음’ 삼아 걷다가 강선마을을 지나면 중간 초소가 나온다. 입구에서 받은 출입증을 검사한다. 이후 계곡은 좁아지고 숲은 더 울창해진다. 높이 자란 소나무 군락을 지나는가 하면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에 이끼가 무성한 원시의 계곡을 만나기도 한다. 점점 깊어지는 숲에는 신갈나무 당단풍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서어나무 들메나무 등 활엽수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 아래 돌 틈마다 자란 관중이 거대한 초록 세상을 보여준다. 천상의 화원으로 가는 진초록 원시림의 길이다. 시원한 산 공기가 주변을 감싼다.

말나리.

키 작은 관목 숲을 지나면 드디어 하늘이 열린다. 약 16만5290㎡(5만평)에 달하는 곰배령의 드넓은 평원이 가슴에 안긴다. 점봉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작은점봉산의 둥그런 봉우리를 기둥 삼아 펼쳐진 곰배령은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해 붙은 이름이다. 작은점봉산 봉우리는 곰의 머리를 닮았다.

지금은 이 길이 산행으로, 여행으로 찾는 곳이지만 옛날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길이었다. 인제군 귀둔리 곰배골 마을에서 진동리 설피밭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이었다. 인제에서 콩자루를 지고 양양에 가서 팔아 그 돈으로 소금이나 해산물을 사서 넘던 삶의 애환이 서린 길이다.

노루오줌.

곰배령은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는 진귀한 야생화와 산야초의 세상이다. 이곳의 주인은 들꽃이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꽃대궐’을 이룬다. 특히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부터 가을까지 절정이다. 나무데크가 깔린 짧은 탐방로 외에는 사람의 발길이 허락되지 않는다.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라고 적혀있는 표지석과 함께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탐방객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폭염과 열대야로 푹푹 찌는 여름날이지만 곰배령은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다.

동자꽃.

하산 전용 탐방로로 들어선다. 남동쪽 방향의 ‘호랑코빼기 전망대’를 통과해 강선마을을 거치지 않고 우회해 하산할 수 있는 5.4㎞ 구간이다. 하산 탐방로라는 말이 무색하게 초반에 내리막이 아니라 오르막길이다. 잠시 걸으면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쉼터가 나온다. 여기서 준비해온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을 수 있다. 이후 또 오르막길. 하산을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이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아득히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을 볼 수 있다.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멀리 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 진동호도 시야에 잡힌다.

둥근이질풀.

길을 이어가면 주목군락지 철쭉군락지 등 올라오면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시간과 체력의 소모도 많으니 개인의 체력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인적 드문 원시림 숲길을 새소리와 함께 고즈넉하게 걸을 수 있다.

진동2리 마을 어귀 발메골에서 3㎞ 정도 산길을 오르면 진동호에 닿는다. 해발 934m 산정에 쪽빛하늘을 담고 있는 인공호수다. 이곳에서 진동리 일대와 점봉산 작은점봉산 곰배령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여행메모
곰배령 ‘숲나들e’ 선착순 예약
왕복 10여㎞ 4시간 정도 소요

하산 전용 탐방로에서 만나는 주목.

수도권에서 자가용으로 간다면 서울양양고속도로 서양양나들목에서 빠지면 가깝다. 내비게이션에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를 검색하면 된다.

곰배령 탐방 출발지는 두 곳이다. 곰배령 탐방로(진동리~곰배령)는 산림청에서, 곰배골 탐방로(귀둔리~곰배령)는 국립공원공단에서 예약 및 관리를 따로 한다. 곰배령 탐방로 예약은 월 1회에 한해 신청자 외 동반자 1인까지 할 수 있다. 18세 이하 청소년은 사전 예약한 부모와 동행할 경우 별도의 예약 없이도 입산이 가능하다.

곰배령 탐방로가 길이 좋고 경사도 완만하다. 곰배령 탐방로를 '숲나들e'(foresttrip.go.kr)에서 예약하고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에 예약한 시간에 가면 된다. 선착순 인터넷 신청으로 하루에 단 450명만을 초대한다. 민박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마을 주민을 통한 대행 예약으로 450명 추가 입산할 수 있다. 하절기(10월 31일까지)에는 오전 9시·10시·11시 3회만 입장 가능하다. 월·화요일은 휴무다.

입구에서 예약 내역과 신분증을 확인하고 파란색 출입증을 준다. 트레킹 도중 확인하고 탐방이 끝난 뒤 반납해야 한다. 생태관리센터에서 곰배령까지는 5.1㎞. 1시간 50분쯤 걸린다. 하산 전용 탐방로는 5.4㎞로, 2시간 소요된다.

진동리에는 펜션과 민박집이 많다. 일대에서 난 산나물로 차려 내는 밥상이 인상적이다. 가까운 곳에 계곡 트레킹으로 유명한 아침가리골과 탄산과 철분 함량이 높은 방동약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