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 감소의 여파로 대입 커트라인이 양극화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로 뽑는 정시모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반적으로 커트라인이 낮아지고 있지만 서울 주요 대학들의 변화는 미미한 반면 비수도권 대학은 폭락 수준이다. 대입 경쟁의 ‘꼭짓점’에 위치한 의대·치의대 등은 오히려 커트라인이 상승했다.
대학 내 학과들의 커트라인도 요동치고 있다. 주요 대학들의 상위권 학과는 떨어지고 하위권 학과는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수험생들이 더 좋은 대학 간판을 따내려고 종전보다 더욱 활발히 움직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큰 폭의 학생 수 감소와 대입 제도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대입은 문·이과 통합형 수능 도입, 정시모집 확대, 6년제 약대 학부 부활 등 ‘역대급’ 변화로 더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수험생들은 ‘수험생 감소→경쟁률 하락→커트라인 하락’으로 낙관하지 말고 실력 있는 재수생 유입 등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 대입 전략을 신중하게 짤 필요가 있다고 입시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은 6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입정보포털 ‘어디가’를 통해 공개된 149개 대학의 2020·2021학년도 합격선을 분석해 발표했다. 사설 입시기관의 자체 데이터베이스에 의존하지 않고 대학들이 직접 공개한 정보를 토대로 했으므로 수험생에겐 더 요긴한 자료일 수 있다.
2020학년도 이전까지 어디가 서비스는 합격선 발표가 대학마다 달랐다. 커트라인의 70% 점수를 공개하기도 하고 90%를 공개하기도 했다. 대학 내 학과들을 비교할 때는 유용했으나 대학 간 비교는 어려웠다. 과거 입시업체들의 대학 배치표처럼 서열을 공고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2020학년도부터 대다수 대학들은 커트라인의 70%로 기준점을 통일해 발표하고 있다. 2019년 나온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에서 대입 정보 공개가 강화되면서 커트라인의 70%로 기준점을 통일하도록 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종로학원의 이번 분석은 대학들의 공개 정보를 활용해 최근 2개 학년도를 비교한 자료로는 처음이다.
먼저 서울 37개 대학의 2020학년도 인문계열 정시모집 70% 컷은 91.3점이었다. 정시 합격자가 100명이라면 70등에 해당하는 수험생의 국어·수학·탐구영역 백분위 평균 점수가 91.3점이었다는 말이다. 2021학년도에는 이 점수가 86.7점으로 4.6점 하락했다. 비수도권 81개 대학은 2020학년도에는 78.8점이었는데 이듬해 57.4점으로 무려 21.4점이나 하락했다. 자연계열도 서울 31개 대학은 4.2점 하락, 비수도권 77개 대학은 18점 떨어졌다.
자연계 최상위권 의대·치의대 등은 변동 없거나 오히려 상승했다. 의대는 97.2점으로 동일했고 치대는 96점에서 96.6점으로 0.6점 올랐다. 한의대는 95.4점에서 97.2점으로 1.8점, 수의대는 95점에서 95.1점으로 각각 상승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도 비슷했다. 서울대 인문계열은 97.6점에서 97.9점, 자연계열은 95.2점에서 95.4점으로 각각 올랐다. 고려대·연세대도 거의 영향이 없었다. 세 대학 평균은 인문계 96.6점에서 96.4점, 자연계 95점에서 94.6점으로 거의 변동 없었다. 2020학년도에 고3 수험생이 6만9045명 감소했고, 2021학년도에 6만3666명이나 줄었지만 끄떡없었던 것이다.
반면 지방 거점국립대들은 직격탄을 맞은 듯하다. 8개 거점국립대 인문계는 2020학년도 79.7점에서 이듬해 76.6점으로 3.1점 떨어졌다. 자연계는 73.2점에서 66.5점으로 6.7점이나 하락했다. 지역의 이공계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간접 증거일 수 있다.
주요 대학 내 학과들의 합격선 변동도 주목되는데 연세대 경영은 98점에서 95.7점, 고려대 사이버국방 94.2점에서 91.7점, 성균관대 글로벌경영 96.2점에서 93.2점으로 떨어지는 등 기존 간판 학과들의 점수 하락과 비인기 학과 점수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상위권 학생들끼리 눈치경쟁이 종전보다 치열해졌다는 걸 암시한다. 일단 상위권 대학에 붙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문·이과와 선택과목 간 점수차 벌어지는 등 예측 가능성이 더 떨어지는 입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수생 변수도 상당할 전망이다. 올해 9월 모의평가 지원자는 10만9192명으로 지난해보다 3만1000여명 증가했다. 코로나19 백신이 목적인 허수 지원자을 고려하더라도 대입 재도전 인원은 역대급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첫 코로나19 입시를 치른 인원 중 제 실력을 발휘 못했다고 여기는 인원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 대표는 “9월 모의평가 후 수시 원서접수까지가 중요한데 상위권 수험생이라면 자신의 위치를 보수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고, 중하위권은 추가합격을 염두에 두고 공격적으로 지원해보는 게 방법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