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독해지는 홍수·폭염·가뭄… 대책도 피해구제도 ‘걸음마’

입력 2021-08-02 04:03
홍수·가뭄·폭염 등 이상기후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우리나라는 54일간의 기록적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고 최근 독일·벨기에 등 서유럽에서는 극심한 홍수 피해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처럼 지구가 보낸 ‘경고의 눈물’은 혹독한 대가로 돌아오고 있다. 세계가 맞닥뜨린 초유의 재난 상황과 기후위기 대응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한 방안 등을 총 6회에 걸쳐 짚어본다.

지난 17일 독일 서부에 위치한 에르프트슈타트시 블레셈 지역이 폭우로 인해 침수돼 있다. 강물이 둑을 무너뜨리고 넘쳐 흐르면서 인근 주택과 채석장이 물에 잠겼다. 독일 서부지역에는 시간당 최대 168㎜의 비가 쏟아졌는데 이는 지난 100년 동안 전례가 없는 강수량이었다. AP연합뉴스

1일 기상청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세계 각국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7월 중순 독일 서부 지역에는 시간당 최대 168㎜의 비가 쏟아져 173명이 사망하고 158명이 실종됐다. 시간당 168㎜는 지난 100년 동안 전례가 없는 강수량으로 기록됐다. 독일 내에서 가장 큰 홍수 피해가 발생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아르민 라셰트 주지사는 “이번 참사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보고 있다”며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 속도를 내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지난 20일 중국 중부 지역 허난성의 정저우 주민들이 폭우로 침수돼 뒤엉킨 차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저우에는 사흘 동안 617㎜의 폭우가 쏟아져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는 1951년 관측 이래 가장 많은 강수량이었다. AFP연합뉴스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도 사흘간 617㎜의 폭우가 쏟아졌다. 지하철 역사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면서 객차에 갇힌 승객 12명 등 총 33명이 사망했고 8명이 실종됐다. 또 인근 주민 20만여명은 대피했고 농지 7만5000㏊가 침수돼 96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중국에선 지난해에도 홍수 피해로 7000만명의 이재민 발생과 37조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40년 만에 최악의 홍수로 130여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실종됐다. 영국 뉴캐슬대학 연구팀은 “지금 같은 수준의 지구온난화가 이어지면 2100년쯤엔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현재보다 14배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작년엔 기록적 폭우, 올해는 가뭄 걱정

우리나라는 지난해 여름 54일간의 최장기간 장마로 전국 평균 강수량이 평년(371.2㎜)보다 1.8배 많은 687㎜를 기록했다. 춘천·순창·담양 등에서는 500년 빈도 이상의 강우가 발생하는 등 홍수피해 위험에 노출됐다. 홍수가 나면 유역 내 댐과 하천이 각각 홍수량을 분담해야 하는데 주로 치수(治水)를 맡는 댐에 홍수량이 과도하게 유입돼 댐 하류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는 실정이다. 특히 한국은 외국 하천보다 유로 연장이 짧고 경사가 급해 하상계수(하천의 최대 유량을 최소 유량을 나눈 비율)가 큰 데다 하천 유황(수량의 변화 상태)도 불안정하다.

올해는 가뭄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정부 측 관계자는 “올해는 작년과 달리 장마 기간이 예상보다 짧아 가뭄이 우려되고 있다”고 했다. 1950년대 이후 가뭄 발생빈도와 강도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작년을 제외하곤 2008년 이후 매년 가뭄이 극성이었다. 하지만 가뭄을 우려해 무작정 댐·하천에 물을 더 채워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집중호우는 이미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을 할퀴고 간 수마(水魔)도 기상 당국이 장마 종료를 예상한 시점보다 늦게 찾아왔다.

홍수 피해 구제 기능은 ‘사실상 마비’

수자원 전문가들은 “유럽과 중국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사태를 볼 때 한국의 치수 대책은 일정 수준 예방효과가 있었다”면서도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이상기후에 대응하려면 발 빠르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물 관련 재난 규모가 커지고 빈번해지면서 댐 하류 하천의 홍수피해 등 자연재난으로부터 국민 생활을 보장하는 ‘정책 보험’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 주도로 운영되는 홍수 피해 관련 재난보험은 풍수해보험과 농어업재해 보험 등이 있다. 2006년 시행된 풍수해보험은 보험료 절반을 정부가 보조하고 민간보험사가 판매하는 식이다. 하지만 가입률이 저조해 수해가 나더라도 손해보전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의 경우 가입 대상 대비 가입률이 0.5%에도 못 미친다. 이에 재난보험 가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주민부담 없이 자동가입이 되도록 하는 등 댐 영향 구간 내 풍수해·농작물의 공적 재해보험화 의무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 전문가는 “재해보험 의무가입이 어렵다면 재해보험 단체가입을 통해 댐 하류 주민의 보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농작물 재해보험 약관 변경으로 댐 하류 주민 침수피해 보장 한도 상향, 댐 관리청 배상책임 보장 특약 신설·보험료 지원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수자원 분야의 ‘물관리 혁신’ 시급

기후위기를 고려한 수자원 분야의 물관리 혁신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댐과 제방 위주의 치수 대책에서 벗어나 유역 내 홍수량을 배분해 선제적으로 홍수량을 저감하는 ‘유역 차원의 종합 홍수 방어’ 대책 필요성이 제기된다. 댐 방류에 따른 수량·수질 영향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대응력을 갖추고 지방자치단체별로 분절된 직하류하천을 중심으로 한 ‘댐-하천 통합관리체계’ 도입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현 체계에서는 하천 정비와 유지관리 대부분을 맡는 지자체의 인력·전문성 부족, 재정·행정적 비효율 문제를 제대로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물이 투과하기 어려운 지층이 크게 늘었다는 점도 문제다. 도시침수, 하수 건천화(乾川化) 등 물순환 왜곡도 심각하다. 최근에는 기후변화까지 더해져 지하수 고갈, 수질 악화 등 도시 물 문제의 대응 취약성도 짙어지고 있다. 이에 장기적으로는 하천과 댐, 지하수, 상·하수도 등 유역 내 물순환 전 과정을 연계하는 관리체계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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