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교회에 에어컨 달아주는 반지하교회 목사님

입력 2021-08-02 03:04
정화건 목사가 지난달 22일 경기도 수원 권선구 신나는교회에 전시된 공예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정 목사는 에어컨 설치 및 수리에 사용하고 남은 배관으로 공예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올해로 20년째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살고 있다. 에어컨을 설치하거나 고쳐야 하는데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교회가 있다면 한달음에 달려간다.

주인공은 바로 경기도 수원 신나는교회의 정화건(60) 목사다. 수은주가 36도까지 치솟았던 지난 22일, 신나는교회에서 만난 정 목사에게 ‘에어컨 사역’을 하러 가장 멀리 간 곳이 어디였는지부터 물었다. 그는 3년 전 찾아간 전남 진도 관사도 이야기를 꺼냈다.

“배를 2번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섬이었어요. 그곳엔 교회가 딱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에어컨을 설치해달라는 연락이 왔었죠. 다마스 승합차에 기증받은 에어컨 3대를 싣고 섬까지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가 에어컨 사역을 펼치는 곳은 주로 미자립교회다. 정 목사는 “요즘엔 한 달에 고치거나 수리하는 에어컨이 20~30대 수준”이라며 “그동안 내 손을 거친 에어컨이 1만대 가까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지하게 힘들지만 그만큼 기쁨도 크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실외기를 설치하고, 벽에 구멍을 뚫고, 배관을 이어붙이고, 에어컨 가스를 채워야 한다. 정 목사는 어디서 이런 기술을 배웠을까.

그 스토리를 설명하려면 정 목사가 신나는교회를 개척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정 목사는 지인으로부터 에어컨 3대를 기증받았는데 설치비가 너무 비쌌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에어컨 기사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구 가게를 들락거리며 기술을 배웠다. 에어컨 사역에 뛰어든 시기도 이때부터다.

정 목사는 “아직 완벽하게 ‘에어컨 기술’을 마스터하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20년째 에어컨 사역을 하고 있으니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엔 수원 지역 에어컨 기사들이, 심지어 과거 자신을 가르쳤던 에어컨 기사까지 정 목사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곤 한다.

경제적 여력이 돼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가 섬기는 신나는교회는 수원 권선구 주택가에 있는 반지하교회로 출석 교인이 정 목사의 가족을 제외하면 1명밖에 없다. 에어컨 수리에 필요한 자재비를 어떻게 충당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 정 목사는 “매달 1만원씩 후원해주는 교회가 35곳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후원 교회를 100개로 늘리는 게 목표”라며 “요즘엔 자재비가 올라 힘들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간 정 목사는 에어컨을 고치러 다니며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예컨대 그는 새끼손가락 끝마디가 없는 왼손을 보여주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2017년 5월, 배관 설치를 위해 드릴로 벽에 구멍을 뚫다가 장갑 낀 손가락이 드릴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가 있었다. 정 목사는 “병원에 갔지만 상처가 너무 심해 손가락을 다시 붙일 순 없다고 말하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에어컨 사역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요즘엔 정 목사를 ‘멘토’로 섬기는 목회자들도 생겼다. 바로 김치헌(경기도 안성 한우리교회) 목사와 백종한(경기도 안산 예닮교회) 목사다. 정 목사는 “후계자가 필요했다. 요즘엔 두 목사님과 함께 사역을 다닌다”고 전했다.

“에어컨 사역을 하면서 기분이 씁쓸해질 때는 많았어요. ‘어려운 교회’라고 부르기 힘든 곳인데, 제 앞에서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는 데가 적지 않았죠. 그런 교회 목회자들을 보면 진짜 어려움이 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원=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