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이 28일 한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사자명예훼손죄 소송을 내겠다고 나섰다. 유족 측은 ‘박 전 시장이 성폭력을 저질렀고 가해자가 명백하게 밝혀졌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을 근거로 작성된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 A씨의 다른 사건 판결문 등에도 성추행 피해 사실이 적혀 있어 법조계에선 ‘허위사실을 유포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가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정철승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박 전 시장 배우자 강난희씨와의 통화 사실을 밝히면서 “사자명예훼손죄는 유족이 고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냐. 물론 쉽진 않은 일이고 결과도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무척 힘드실 수 있다”고 말하자, 강씨가 “언젠가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려 왔다. 정 변호사가 하자고 하면 하겠다”고 답했다고 적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로 유족이 고소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다. 앞서 정 변호사는 지난 26일 한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박 전 시장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A씨의 일방적 주장을 객관적으로 확정된 사실처럼 표현한 것은 사자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정 변호사 주장에 대해 법조계에선 혐의가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박 전 시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긴 했지만, 인권위에서 나름대로 조사를 해서 내린 결론은 공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료”라며 “기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성추행 의혹의 실체를 규명할 결정적 물증이 될 수 있는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이 변사 사건 수사 목적으로만 진행된 점을 들며 “이번 소송으로 수사가 본격화돼 휴대전화 포렌식이 이뤄져야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휴대전화는 유족이 갖고 있다.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 재판에서도 박 전 시장의 성추행 가해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법원은 지난 1월 정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며 “피해자가 박 전 시장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의 정신과 상담 내역을 들며 “박 전 시장 밑에서 근무한 지 1년반 이후부터 박 전 시장이 야한 문자, 속옷 사진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고도 했다.
인권위 직권조사 결정문에도 박 전 시장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심야에 보낸 사실이 인정된다고 나와 있다. A씨의 일방적 진술이 아닌 박 전 시장이 A씨에게 보낸 사진과 메시지, 이모티콘 등을 실제로 봤다는 참고인의 진술 등을 종합해 내려진 결론이었다. 청년정의당 강민진 대표는 이날 “소송 진행 자체가 2차 가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소송 철회를 요구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