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기획재정부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선거 날짜가 다가올수록 ‘선거용 정책’이 남발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선 공약 예산 추계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과거에 한번 크게 데였던 경험 때문에 기재부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기재부는 2012년 19대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여야 복지 공약 실현을 위해 필요한 예산 추정치를 전격 공개했다. 당시 2차관이었던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총대를 멨다. 김 전 부총리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복지 공약 266개(중복되는 공약은 1번만 계상)를 모두 집행하려면 기존 복지 예산 92조6000억원 외에도 5년간 최소 268조 원이 더 필요하다”며 “추가 증세나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기재부의 이례적인 ‘파격 행보’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바로 다음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기재부 발표에 대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어긴 선거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만 이와 별개로 ‘공약 예산 추계’ 자체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이 됐다. 이후 선관위는 관련 제도 도입을 위해 몇 차례 시동을 걸었지만 결국 성사되진 못했다. 국회에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도 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못 되고 번번이 좌초됐다.
기재부 내에서도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선심성 공약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없지 않다. 현실적으로 사실상 기재부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공약 예산 추계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의 경우 호주·뉴질랜드는 재무성이, 네덜란드는 경제정책분석청(CPB)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
실제 기재부 내부적으로 대선 같은 큰 선거를 앞두고서는 후보자의 공약 예산을 대략적으로라도 추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대외 파장을 우려해 공개는 하고 있지 않다.
한 공무원은 28일 공약 예산 추계가 일종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는 기재부가 무슨 자격으로 공약 예산 추계를 하느냐고 할 테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재부가 왜 손 놓고 있냐고 할 것이 아니냐”며 “어떤 결과를 내놓든 기재부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재부가 ‘공공의 적’이 될 것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한 고위 공무원은 “대선을 앞두고 재정당국은 각기 다른 이유로 정치권의 표적이 될 것”이라며 “여당에서는 기재부가 재정을 아낀다고 할 것이고, 야당에서는 왜 당국이 건전재정을 위한 역할을 안 하느냐고 비판할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공무원도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선거가 있었던 탓에 기재부는 이미 코너에 몰릴 때까지 몰렸다”며 “최근 국민지원금 대상 확대도 그렇고, 대선까지 남은 7개월 동안 어떤 일이 더 벌어질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