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마스크 벗을 날이 올 줄 알았는데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예배당도 조만간 수용 인원의 20%에서 30%, 50%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시 전면 비대면 예배로 돌아갔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시 일상을 멈춰야 하는 시간.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일지 모르겠다.
얼마 전 대전에서는 생후 20개월 된 딸 시신을 유기한 엄마가 구속된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아이 아빠가 딸이 잠을 자지 않고 울자 이불로 덮은 뒤 폭행해 숨지게 했다고 한다. 아동학대 사건은 잊을 만하면 일어난다. 8개월 된 입양아를 지속적으로 폭행해 두 돌이 되기 전 죽음에 이르게 한 ‘정인이 사건’도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여론은 들끓는다.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올 초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인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생명이 해를 당할 때는 모두 예외 없이 분개한다. 늦었지만 ‘신속한’ 정인이법 처리도 그 덕분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을 대할 때는 무관심하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헌법불합치로 판결한 낙태 관련 법안은 입법 시한이었던 지난해 연말까지 국회에서 개정되지 않아 올 1월 1일부터 입법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현 상태로서는 낙태 시술을 한 의사에게 무죄가 선고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 여러 낙태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선 앞두고 표 계산이 먼저여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일단 제출된 법안들을 분석해 보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중 어디에 우선순위 또는 비중을 두느냐에 차이가 있다. 권인숙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형법에서 낙태죄 규정을 전면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태아의 생명권은 고려되지 않는다. 반면 정부는 임신 14주차까지는 낙태를 허용하고 그 이후라도 24주차까지는 모자보건법이 규정하는 사유에 한해 낙태죄 적용을 배제하는 방안을 내놨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의 개정안은 임신 6주차까지 낙태만 허용한다. 다만 친인척 간 임신인 경우는 10주차, 강간·준강간이거나 임신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 20주차까지 임신중절 수술을 예외로 인정한다. 조 의원 안이 진일보한 점은 낙태 허용 기준을 임신 6주로 했다는 것이다. 대개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시점은 임신 6주 정도로 본다. 미국의 여러 주는 의사들에게 태아의 심장 박동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한 번이라도 감지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낙태 시술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런 낙태 제한법이 ‘심장박동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낙태를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관점은 명확하다. 태아는 신의 창조물이고, 낙태는 살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범한 자들을 향한다. 하지만 실제 기독교인의 모습은 어떨까.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을 지낸 박상은 샘병원 미션원장의 국민일보 기고문을 읽으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박 원장은 기독교인의 낙태 비율은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고 오히려 일부 통계에선 기독교인이 조금 더 많이 낙태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지적한다. 매일 3000여명의 태아가 낙태되고 그중 기독교인에 의해 500여명의 태아가 죽임당하는 상황인데도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낙태에 관한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존재는 바로 태아다. 형법과 모자보건법 등 낙태 관련 법이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질지 모르겠다. 최소한 기독교인들만이라도 세상 법이 아닌 생명의 법에 따라 모든 낙태를 거부하고 생명을 지켜나갈 수 있길 바란다.
맹경환 종교부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