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난 집에서 아기를 구하지 못해 재판을 받았던 20대 엄마 A씨(25·국민일보 7월 20일자 11면 보도)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주변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전 임신한 A씨는 낙태를 권하는 친정과 인연을 끊고 사실상 육아를 전담해왔다.
27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20대 초반 임신한 뒤 낙태를 권한 부모를 떠나 집을 나왔다. 양가의 반대가 있었지만 남편 B씨와 동거하면서 아들을 낳았다. 이후 부부는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남편과의 사이도 나빠지면서 A씨는 양육 과정에서 남편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불행한 화재 사고는 이처럼 A씨가 아이를 홀로 키우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A씨는 2019년 4월 화재가 발생한 집에서 12개월짜리 아들을 구조하지 못한 채 집을 빠져나왔다. 이후 아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6월 1심이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데 이어 지난 26일에는 항소심도 무죄를 선고했다.
A씨 1심 변호를 맡았던 최보미 변호사는 A씨가 아이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A씨가 아이를 지키려고 친정어머니랑 연을 끊고 가출까지 했다”며 “남편도 어리고 본인도 준비가 안 됐지만 나름대로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아이를 잃은 슬픔에 A씨는 화재 사건 얘기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 재판에서도 A씨가 아이를 구하려고 시도한 점을 참작했다. A씨는 119에 “안에 아이가 있다”며 신고 전화를 했고, 1층에 내려가 행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A씨 나름대로 아이를 구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했다”고 평가했다. 불이 난 후 남편에게도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A씨에 대한 재판 사실이 알려진 후 맘카페 등을 중심으로 ‘집에 불이 난 상황에서 엄마가 아이를 두고 나왔다’는 점이 부각돼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에는 A씨에게 엄벌을 내려 달라는 탄원서가 수백통 쏟아졌다. 비판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지 못한 엄마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최 변호사는 “A씨는 소극적인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이라며 “많이 어렸다. 사실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뛰어들 사람도 많았겠지만 그러질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론에 휩쓸려 재판부에 압박을 가하는 행위 자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판부 판단에) 압박을 가할 목적으로 진정을 넣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제삼자 진정서가 판사의 심증에 영향을 준다면 그게 더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