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이를 피하기는커녕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조리 현장에서 불과 싸우는 무료 급식 자원봉사자들의 땀은 노숙인의 허기를 채운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운영 중인 급식소가 줄면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는 노숙인이 늘자 불 앞에 서 있는 조리 시간도 덩달아 늘었다.
폭염이 한창인 가운데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도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한여름에도 패딩을 입고 영하의 냉동창고와 폭염을 오가는 수산물 냉동창고 노동자들에게 여름은 겨울보다 힘든 계절이다. 더울수록 냉동 보관으로 신선도를 유지하는 일 역시 더욱 중요해진다. 폭염 속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고된 환경이지만 일의 보람이 나를 버티게 한다”고 말했다.
폭염이 한창인 가운데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도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한여름에도 패딩을 입고 영하의 냉동창고와 폭염을 오가는 수산물 냉동창고 노동자들에게 여름은 겨울보다 힘든 계절이다. 더울수록 냉동 보관으로 신선도를 유지하는 일 역시 더욱 중요해진다. 폭염 속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고된 환경이지만 일의 보람이 나를 버티게 한다”고 말했다.
700인분 준비하는 2개 화구는 용광로
27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무료급식소 2층 조리실. 노숙인들에게 제공할 음식을 만드는 자원봉사자 박민경(61)씨의 앞치마 주머니에는 얼음물이 꽂혀있었다. 박씨는 연신 “어휴 덥다 더워”라며 얼린 페트병을 얼굴과 목에 대며 열기를 식혔다.
연중무휴로 매일 아침과 점심 식사를 노숙인들에게 제공하는 이곳에선 매일 오전 7시부터 밥을 짓는다. 33㎡(약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1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음식을 준비한다. 낮 최고기온이 35.7도를 기록한 이날, 7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2개의 화구에서는 쉼 없이 불이 올라왔다. 밥 짓기 담당 심유순(65·여)씨의 얼굴은 뜨거운 증기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옆에서 호박과 멸치를 볶는 불길까지 더해지자 도시락에 반찬을 담던 기자 얼굴에도 땀이 쏟아졌다.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불길은 세졌다. 땀방울이 굵어진 봉사자들은 교대로 에어컨과 선풍기 앞에 서서 상의를 펄럭였다. 한 봉사자는 “봉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냉국”이라며 “냉국을 만들 때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오전 11시가 되자 봉사자들과 함께 준비된 식사를 박스에 담아 무료급식소 건물 앞 노상으로 옮겼다. 더위를 식힐 선풍기나 에어컨도 없이 내리쬐는 뙤약볕과 그대로 맞서야 했다. 1층과 2층을 오가며 박스를 옮기던 대학생 송찬영(23)씨는 “갑자기 현기증이 와 계단에서 휘청였다”고 털어놨다.
오전 11시30분이 되자 노숙인들의 줄이 70m가량 이어졌다. 주먹밥과 냉국, 호박 무침을 담은 도시락 검정 봉투를 한 개씩 건넸다. 1시간쯤 뙤약볕과 사투를 벌이자 입고 있던 옷은 물론 마스크까지 물에 빠진 사람처럼 축축하게 젖었다.
무료급식소 책임자인 손영화(66)씨는 “코로나 전에만 해도 노숙인 250명 정도가 밥을 받아 갔는데 지금은 400명으로 늘었다”며 “이 사람들 사정을 외면하기 어려워 (무료급식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감염 우려로 급식소 운영을 중단한 곳들이 늘어나면서 도시락을 받으려는 노숙인들은 폭염 속에도 멀리서부터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이들이 폭염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은 보람과 배려였다. 1년6개월째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심씨는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건 정말 힘들지만 내 손으로 많은 분의 끼니를 해결한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송씨는 “밖에서 도시락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은 더 덥지 않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한여름에 패딩… 안팎 50도 온도차 견뎌
여느 때처럼 숨을 들이마셨을 뿐인데 코와 목이 냉기로 얼어붙는 듯했다. 낮 최고기온이 36도에 육박하던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지하 2층 냉동창고 앞은 숫자 ‘-17.8’이 선명했다. 냉동창고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50도 넘게 내려간 온도 변화에 몸도 긴장한 듯 얼어붙었다.
좀 전까지 땀으로 끈적했던 팔은 한기로 뒤덮였고, 알 수 없는 통증까지 찾아왔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두통도 시작됐다. 그 순간 긴 소매 내의와 두꺼운 외투를 겹겹이 껴입고 패딩점퍼까지 챙겨 입은 작업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꽂혔다. 반팔 차림의 기자는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외부인’이었다.
안전모까지 쓰고 호기롭게 안으로 들어갔지만 작업은커녕 서 있기도 쉽지 않았다. 수산물 상자를 쌓는 보조 업무를 하려 했으나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도 무거워지며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반팔 차림으로는 더 버틸 자신이 없었다. 냉동창고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찜질방 같은 무더위를 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채 10분도 버티지 못했다.
그 사이 냉동창고에서 만난 박경환(37)씨는 익숙한 듯 창고 안에 있던 지게차로 향했다. 그는 거침없이 차량을 직접 몰아 10m 높이의 선반 위로 이동했다. 수산물 상자들이 쌓여있는 팔레트(대형 화물운반대)를 옮기며 재고 관리에 속도를 냈다.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씨는 냉동창고 밖에서도 긴팔 차림이었다. 그는 “냉동창고 안이든 밖이든 작업자들은 출근하면 한여름에도 늘 두꺼운 옷을 입고 지낸다”며 “온도 변화를 적게 느끼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계절 내내 냉동창고 안에서 일하다 보면 계절을 잊어버리기 일쑤”라며 웃었다.
온도 변화를 적게 하려 해도 여름은 겨울보다 힘들다. 냉동창고 내외부 온도 차가 겨울보다 여름이 심해 체력적으로 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5년 동안 이곳에서 일한 베테랑 박씨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 냉동창고에 들어가면 갑작스러운 한기에 어지러움을 느껴 휘청일 때가 있다고 했다. 갑자기 바뀌는 온도 때문인지 감기도 직업병처럼 달고 다닌다.
박씨는 폭염과 혹한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지만 전국으로 신선한 수산물을 보급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추위와 더위를 오가는 극한의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