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넘게 반복된 인플루엔자 대유행 사례들을 가장 치명적으로 만든 건 언제나 변이 바이러스였다. 감염을 통한 자연면역 형성과 백신 보급으로 인류가 팬데믹 극복에 자신감을 갖는 시기에 변이는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
존 M 베리 미국 툴레인대 공중보건·열대의학과 교수는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19가 인류에 적응하면서 변이의 전염력이 더 강해졌다”며 과거 5차례 인플루엔자 대유행 때도 변이가 더욱 치명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베리 교수는 책 ‘그레이트 인플루엔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팬데믹에 대한 이야기’를 2004년 말 출간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2년간 전 세계를 휩쓸고 간 뒤였다.
베리 교수는 WP 기고문에서 “1889년 시작된 팬데믹은 영국에서 첫 번째 해보다 두 번째 해에 두 배 이상 치명적이었다”며 “많은 국가에서는 세 번째 해가 더 치명적이었다”고 분석했다.
1918년부터 2년간 세계적으로 최대 50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독감 역시 1차 유행 때는 전염성이 강하지도 치명적이지도 않았다. 당시 영국에서 1만313명이 감염됐는데 이 중 사망자는 4명에 그쳤다. ‘폭발적인 2차 확산’을 일으킨 건 변이였다고 베리 교수는 설명했다.
아시아 독감으로 불리는 1957년 팬데믹의 경우 사망자 수가 정점을 찍은 시기는 백신이 개발된 뒤인 1960년이었다. 당시는 앞선 감염으로 많은 사람이 면역을 갖게 됐다고 여겨진 시기이기도 했다. 백신과 자연면역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 범인은 변이였다.
다음 팬데믹인 1968년 홍콩 독감 대유행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은 이듬해가 더 치명적이었다. 백신이 나오고 자연면역도 형성한 뒤였지만 변이에는 무기력했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는 미국에서 빠른 전파력과 높은 치명률을 가진 변이가 생겨났다. 다른 지역도 대유행 이후 1년간 중증질환에 더욱 몸살을 앓은 것으로 나타났다.
베리 교수는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에 적응하고 면역체계가 더 잘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덜 위험해진다”며 “그게 지금 나타나야 하지만 델타의 발병력이 증가했든 아니든 더 위험한 또 다른 변종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델타 변이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더라도 또 다른 변이가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모두 백신으로 보호받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금의 백신과 자연면역을 우회하는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변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항체의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게 기존 연구의 결과다.
베리 교수는 “델타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최악의 변이라고 해도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를 일으킬 것”이라며 “기존 백신의 추가 접종 필요성과 상관없이 결국 최신 변이를 대상으로 업데이트된 백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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