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하나 찍어주세요.”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가 시작된 27일 오전. 엄마는 벽에서 떼어낸 아들의 사진을 가슴에 안았다. 사진은 유족들이 꽃잎을 직접 따다 꼭꼭 눌러 만든 꽃누르미(압화)로 장식돼 있었다. 이날 50여명의 유족은 기억공간 이전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희생자를 기억하는 물건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옮기겠다고 했다. 서울시와 대치를 벌인 지 나흘 만이었다. 유족들은 서울시의회에 마련된 임시 공간으로 기억공간을 이전키로 했다.
철거에 앞서 유족들은 6인 1조로 나눠 아이들 사진이 나란히 걸린 벽 앞에 서서 짧게 묵념했다. 인사를 마친 유족들은 사진을 하나씩 닦은 후 학급별로 분리된 노란 상자에 차곡차곡 쌓았다. 한 유족은 사진을 모두 떼어낸 자리를 떠나지 못하다 빈 곳을 쓰다듬으며 “(우리 아이의 자리는) 여기였다”고 했다.
유족들이 사진과 물건을 치운 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위한 기억공간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2014년 7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식농성 천막이 설치된 지 7년 만이다. 철거에 앞서 세월호가족협의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광장의 역사를 지우지 말라”고 외쳤다.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기억공간은 국민의 생명을 고민하고 공감하는 공간”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어떻게 촛불의 역사를 오롯이 광장에 담아낼지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기록물들을 서울시의회 1층 전시관으로 직접 옮겼다. 건물 해체 작업에도 직접 참여해 건물 자재를 안산으로 가져가 보관할 계획이다.
서울시 측은 철거 준비를 위해 지난 23일부터 매일 현장을 찾았으나 유족 반발 탓에 내부 진입조차 할 수 없었다. 철거 시한으로 서울시가 통보했던 전날에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 등이 잇따라 현장을 방문해 서울시의회 내 임시 공간 마련 등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서울시는 철거가 시작된 후 입장문을 내고 “광화문광장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월호의 희생을 기릴 방안에 대해 유족의 제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며 “(자진 철거는) 광화문광장의 온전한 기능 회복을 위한 지혜로운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시와 유족 측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관련 기념물을 조성하는 방안 등을 포함한 향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