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든 수입 채우려 스리잡·포잡… 빠져드는 N잡의 굴레

입력 2021-07-27 04:06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이 늘면서 지난해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34배 늘어난 2조2779억원으로 집계됐다. 총 7만2350개 사업장에서 77만3086명이 지원을 받았다. 지원 사업장과 인원수도 각각 2019년 대비 48배, 25배 증가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올해에만 7506억원의 고용유지지원금이 지급됐다.

고용유지지원금은 매출 감소 등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사업주가 인원 감축 대신 휴업이나 휴직 등으로 고용유지를 할 경우 정부가 필요 비용의 3분의 2 수준까지 지원하는 제도다. 항공사나 여행사처럼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의 경우 특별고용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필요 비용의 90% 수준까지 정부 보조금이 주어졌다. 하지만 개별 노동자 입장에선 임금 감소 등 경제적 타격을 온전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정부 보조금 지급 대상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편이다. 계약직, 임시직 같은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 보장 약속을 받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본업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또 다른 임시직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방과 후 컴퓨터 강사인 박진화(가명·47)씨는 1년에 한 번씩 학교 측과 계약을 맺는 비정규직이다. 1주일에 3일, 3시간씩 수업을 하고 학교로부터 수강생 수에 따라 급여를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한 후 학교는 방과 후 수업들을 잠정 중단했다. 갑작스레 진화씨 수입도 끊겼다.

비슷한 시기 자영업자인 진화씨 남편도 코로나19로 수입이 크게 줄었다. 중학생 아들 두 명을 키우는 진화씨는 그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대형 물류센터 택배 분류 일을 시작했다. 진화씨는 26일 “물류센터에 가보니 다들 코로나 때문에 ‘투잡’ ‘스리잡’ 하는 사람들이었다”며 “코로나19가 조금 나아지던 시점에 퇴사하고 본업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생전 처음 하게 된 일은 고단했지만,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1년을 겨우 버텼다.

다행히 지난 5월 학교로부터 ‘방과 후 수업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 길로 물류센터 일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갔다. 하지만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는 바람에 또다시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달 초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방과 후 수업이 기약 없이 중단된 것이다. 진화씨는 임시로 긴급돌봄을 신청한 맞벌이 가정 아이들의 보조 업무를 맡았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원격 화상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지만 이마저도 교내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중단됐다. 진화씨는 현재 학습지 교사 일을 알아보고 있다.


코로나19로 N잡은 부업 수준을 넘어 스리잡, 포잡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하도급업체, 공기업 자회사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런 경우다. 줄어든 수입을 어떻게든 메꾸기 위해서는 잠시 짬이 나는 자투리 시간에도 일해야 했다.

한 자동차 대기업의 2차 협력업체에 다니는 40대 가장 최원재(가명)씨의 하루는 4시간짜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시작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반도체 칩, 자동차 부품 등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원재씨의 회사도 큰 타격을 입었다. 휴업 일수가 늘어나면서 급여도 월 2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원재씨는 회사를 가지 않는 날에는 4시간씩 3타임으로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오후에는 ‘쿠팡플렉스’ 배송 아르바이트를 한다. 저녁 시간에는 ‘배달의민족’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본업까지 합칠 경우 4개의 다른 직업을 가진 ‘포잡’이다.

자동차 대기업 1차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김진우(가명·50)씨도 근무 시간이 줄었다. 1주일을 정상 근무하면 다음 1주일은 쉬어야 한다. 휴업 기간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지급되지만 정상 근무 때보다 급여는 낮다. 300만원 수준이던 월급은 210만~220만원 정도로 줄어들었다. 진우씨는 휴업 주에는 줄어든 수입을 메꾸기 위해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린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기 위해서다.

기존에 받던 월급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던 이들은 코로나19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한 공기업 자회사에서 시설관리자로 일하는 60대 이정호(가명)씨도 휴업 일수가 늘어나면서 월 200만원대 중반 정도 되던 급여가 100만원대 후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회사는 사무직 재택근무 확대로 코로나19 이전처럼 시설 관리를 자주 할 필요가 없다며 휴업 일수를 늘렸다. 같은 이유로 청소 노동자들의 휴업 일수도 늘어났다.

정호씨는 휴업 날 지인을 통해 집수리 현장에 가서 일을 하거나 인력사무소를 통해 건설현장 일용 근로를 하는 방식으로 줄어든 수입을 메꾸고 있다고 했다. 정호씨의 동료들도 대리기사, 택배 아르바이트,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N잡러로 일하고 있다.

은퇴를 앞둔 정호씨 입장에서 고된 건설 현장 일은 버겁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다. 주변에서는 ‘수입이 줄어든 만큼 아껴서 쓰면 되지 않나’고 말한다. 정호씨는 “고정 지출이 있는 상황에서 줄어든 급여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어 다른 임시 일터를 찾는 것”이라며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나온다지만 기존에 받던 월급보다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전부터 심화하고 있던 ‘N잡’ 증가 추세가 코로나발 경제적 타격으로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이라며 “일반적 고용관계로 묶이지 않아 사용자가 특정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경우는 고용유지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돼 실제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