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에 ‘부자 감세’ 기조로 돌아섰다. 코로나19로 주저앉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투자를 늘리려는 취지로 읽힌다. 하지만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적자 재정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권 말 퍼주기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26일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3대 국가전략기술에 1조1000억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내용 등을 담은 2021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3대 분야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 최대 50%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키로 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기업의 R&D와 시설투자를 일반 투자와 신성장·원천기술 투자 2단계로 나눠 차등 지원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3단계 트랙인 국가전략기술을 신설했다.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세액공제율은 신성장·원천기술에 대한 지원보다 R&D는 10% 포인트, 시설투자는 3∼4% 포인트 높였다.
정부는 국가전략기술로 반도체, 배터리(2차전지), 백신 3대 분야에서 65개 항목(R&D 34개·대상시설 31개)을 선정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가 핵심기술, 공급 능력을 선점·확보할 경우 공급망 주도권과 대외 영향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개인투자용 국채에 대해선 만기까지 보유하면 이자소득을 9% 분리과세하는 혜택을 신설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로 국내주식에 투자해 얻은 수익은 비과세하기로 했다. 기부금 세액공제율도 기존 15%에서 20%로, 1000만원 초과분은 30%에서 35%로 5% 포인트 올린다.
이런 내용의 세법개정에 따른 세 부담 감소는 주로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돌아간다. 3대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확대로 대기업은 8830억원의 감세 효과를 누릴 전망이다. 올해 세법개정으로 향후 5년간 1조5050억원의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대기업에 돌아가는 셈이다.
개인투자용 국채와 ISA 국내 주식 투자 비과세는 서민층보다는 고소득층의 세금 절감 효과가 크다. 최소 3년에서 최대 20년까지 투자액이 장기간 묶이게 된다는 점에서 주로 여유자금이 있는 고소득층이 이 혜택을 누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기부금 세액공제율 인상도 기부금 액수가 클수록 세금 감면 폭이 커진다.
정부가 지난 4년간 추진해 온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 기조가 정권 말 갑자기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현 정부 들어 5번의 세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고소득자의 세 부담이 줄어든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국가전략기술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세제 지원책을 대거 포함한 것은 비판받을 만하다”면서 “대기업이 그런 혜택이 있어야만 투자를 하는 것인지에 관해 국민을 설득할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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