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지난 1년간 구축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체계가 모래성처럼 녹아내리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집단면역’을 달성하려면 백신 접종률이 거의 100%에 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신 보급 속도와 접종 기피 현상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수치다.
전염병 역학 전문가 마크 울하우스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는 델타 변이에 집단면역을 갖추려면 백신 접종률이 80~90%를 넘겨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동안 각국 보건 당국이 제시했던 접종률 60~70%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백신 접종으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 접종률을 95% 이상으로 잡아야 한다는 추정치도 있다고 WSJ는 전했다.
신문은 “게다가 백신의 예방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그런 방어 수단을 우회하는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울하우스 교수는 “집단면역 기준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언제 거기에 도달하느냐’가 아니라 ‘도달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집단면역 도달 가능성은 개발도상국일수록 희박하다.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최상으로 가정하더라도 올해 말까지 아프리카 내 백신 접종률이 25~30%에 그칠 것으로 본다. 인구 13억명인 아프리카의 완전 접종률은 지금 1.5%도 안 된다.
미국 화이자와 함께 백신을 개발한 독일 제약사 바이오엔테크의 우구르 사힌 CEO는 “급속도로 확산하는 델타 변이에 화이자 백신 완전 접종자들의 면역이 약해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접종자 대부분이 중증질환으로부터는 계속 보호를 받을 것”이라며 “아직 (효과 강화를 위한) 세 번째 접종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델타 변이 출현으로 팬데믹은 출구로부터 다시 멀어져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백신 접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확진자가 다시 급증한 사례는 팬데믹 종식에 대한 기대감을 꺾고 있다.
델타 변이는 2019년 중국에서 처음 등장한 기존 코로나19보다 전염성이 2~3배 강하다. 기존 바이러스는 감염자 10명이 평균 25명에게 전파하는 데 비해 델타 변이는 60~70명을 감염시킨다고 WSJ는 설명했다.
바이러스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GISAID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델타 변이는 지난해 말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00곳 넘는 지역에서 발견됐다.
이달 중순 보고된 코로나19 표본은 약 80%가 델타 변이로 한 달 전 2배 수준이다. 변이가 종전 바이러스를 빠르게 대체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감염 사례 중 델타 변이 비중은 미국이 83%, 영국은 99%로 압도적이다. 유럽은 프랑스 독일 스웨덴 포르투갈에서 분석된 바이러스의 절반 이상을 델타 변이가 차지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이 비율이 각각 70%대, 60%대로 역시 높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역학조사 전문기관을 이끄는 줄리엣 풀리만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델타 변이 출현으로 팬데믹은 다시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남아공은 지난주에만 1만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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