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0시15분쯤 서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로 차량 출입이 통제된 광장 차도 방향에 하늘색 조끼를 입은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의 조끼에는 ‘서울특별시’라는 흰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이들 바로 앞에는 4·16연대 등 세월호 유족단체와 여러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세월호 지우기와 세월호 기억관(공간) 철거를 중단하라’고 적힌 커다란 팻말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서 있었다.
앞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위치한 기억공간을 26일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3일과 24일 현장을 찾은 데 이어 서울시 관계자들은 이날도 “당장 물품을 빼지 않을 테니 (기억공간) 내부 구조라도 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외치며 입구를 막아섰다.
이어 안으로 들어가려는 서울시 관계자를 향해 이후 유족 측이 “당신 자식이었어도 이렇게 했을 거냐”고 소리치자 서울시 관계자도 “막말하지 마시라”며 응수하며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철거 책임자는 “유족과의 무력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미 철거가 결정된 만큼 대화로 풀어보겠다”고 말한 뒤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이후에도 오후까지 몇 차례 현장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현재 기억공간은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공사장 펜스로 둘러싸여 있다. 유족 측은 언제 시작될지 모를 철거 시도에 대비해 순번을 정해 현장으로 나왔다. 내리쬐는 태양에 챙이 넓은 모자와 양산, 휴대용 선풍기에 의지해 내내 기억공간 곁을 지켰다.
당초 세월호 추모공간은 천막 14동으로 5년간 운영됐다. 지금의 기억공간은 2019년 4월 12일 천막을 철거한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목조 건물이다. 당시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 일정에 따라 2019년 12월까지 운영하기로 합의했으나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이 유족과 협의해 지난해 말로 철거를 연기했다.
서울시는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가 본격 시작된 만큼 철거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억공간에 있던 물품 등은 서울기록원에 임시 보관한 뒤 2024년 5월 경기도 안산시 화랑공원에 추모시설이 완성되면 이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유족 측은 반발하고 있다. 단순 기록 전시가 아닌 시민들과 교감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족 측은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철거 날짜를 정한 뒤 기습 철거를 시도했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라며 “공사 일정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충분한 협의를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광화문광장이 세월호 참사 시민운동의 거점인 만큼 공사 이후 추모공간 설치와 관련해 원만한 논의가 이뤄질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기억공간 철거 관련 긴급구제를 신청하기도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