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
전체 206개국 중 103번째로 국호가 호명되자 태극기를 든 김연경(배구)과 황선우(수영)를 앞세운 대한민국 선수단이 개회식 장소인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신국립경기장)으로 들어왔다. 입장단은 역대 최소인 32명(선수 26명·임원 6명) 규모였다. 텅 빈 6만8000석 규모의 관중석엔 선수들을 반기는 뜨거운 함성 대신 적막 가운데 메아리만 울려 퍼졌다.
코로나19 시대 첫 번째 대규모 국제대회인 2020 도쿄하계올림픽이 23일 오후 8시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막을 올렸다. 일본 정부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취소와 재연기 여론에도 불구하고 개회식을 강행했지만, ‘지구촌 축제’의 서막은 초라하기만 했다.
일본은 1964년 이후 57년 만에 도쿄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을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의 비극을 딛고 나라 전체의 부흥과 재건을 도모한다는 모토 아래 준비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일본만의 재건과 부흥이 아닌, 인류 전체의 코로나19 극복 염원을 담겠다고 공언해왔다.
역대 최초 무관중으로 치러진 이날 개회식은 인류 전체의 의지를 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개회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급 인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소수에 불과했다. 개회식을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도 내외빈과 취재진 950명뿐이었다. 일본 왕실에선 나루히토 일왕이 참석했지만, 도쿄올림픽을 유치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마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에선 문재인 대통령 대신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의 독도 표기로 비롯된 올림픽의 정치적 이용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개회식에선 일본의 톱 가수 미샤가 제국주의의 상징이자 일왕을 찬양하는 국가인 ‘기미가요’를 제창했다. 올림픽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사상 최저에 가깝다.
이날 개회식을 준비한 전문가들을 둘러싸고 불거진 각종 논란도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다 함께’(Faster, Higher, Stronger-Together)란 올림픽 슬로건이 무색하게 만들었다. 22일엔 개·폐회식 감독을 맡은 고바야시 겐타로가 유대인 학살을 희화화하는 콩트를 한 영상이 논란된 뒤 해임됐다. 앞서 음악감독, 개·폐회식 총괄책임, 도쿄조직위 위원장이 학창시절 괴롭힘,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각각 사퇴했기에 도쿄올림픽은 ‘스캔들 올림픽’이란 오명까지 붙었다.
논란과 우려 속에서도 올림픽 성화대에는 불이 붙었다. 206개국 약 1만1000명의 선수들은 다음 달 8일까지 33개 정식 종목, 339개 세부 경기에서 17일간 메달을 다툰다. 29개 종목에 선수와 임원 354명을 파견한 한국은 금메달 7개, 종합 10위 이내 입상을 목표로 도쿄올림픽에 임한다.
도쿄=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