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해지·수수료 횡포… 대행업체 갑질에 배달기사들 피눈물

입력 2021-07-23 04:03

수도권 배달대행업체 대부분이 배달노동자들에게 배달료 미기재, 일방적 수수료 변경, 불합리한 배상책임 규정, 일방적 계약해지 등을 강요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업체들은 이같은 불공적 계약을 시정하겠다고 했지만,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고 일부 업체들은 아예 자율 시정마저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공정거래위원회, 국토부, 경기도, 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함께 지난 4~7월 서울 경기 지역에 등록된 배달노동자 50인 이상을 고용한 163개 지역 배달대행업체(서울 64개, 경기 99개)를 대상으로 대행업체·배달노동자 간 계약실태를 점검한 결과 불공정 내용을 다수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배달료 미기재, 일방적 수수료 변경, 불합리한 배상책임 규정, 계약해지 후 경업금지(경쟁업종 창업금지) 의무 부과, 배달기사의 멀티호밍(여러 업체와 계약) 차단, 일방적 계약 해지 등이다.

이번 점검은 ‘분리형 배달대행앱’ 3개사(로지올, 바로고, 메쉬코리아 등)와 협조해 ‘지역 배달업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지역 배달업체로부터 계약서를 제출받아 1차 확인하고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불공정 항목 포함 여부를 점검했다.

배달대행은 주문앱(우아한청년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쿠팡 등)과 직접 계약한 기사가 배달하는 ‘통합형’과 음식점이 배달대행앱에 픽업을 요청하면 다시 지역 배달대행업체로 배달업무를 지시하는 ‘분리형’으로 나뉜다.

점검에서 폐업 및 주소불명 업체(22개)를 제외한 총 141개 업체 중 불공정조항이 발견된 111개회사(서울 31개, 경기 80개)는 표준계약서를 채택하고, 13개 업체(서울)는 사용중인 계약서 내 불공정조항을 고치기로 했다.

그러나 적발된 17개 업체는 표준계약서 채택과 자율 시정조치까지 모두 거부했다. 서울시는 이들 업체에 대한 배달노동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더 강도높은 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표준계약서는 지난해 10월 배달업계·노동계 등이 주도하고 관계부처가 지원한 사회적 대화기구 논의를 통해 마련된 것이다. 불공정거래행위금지, 차별 금지, 산재보험 가입 등 배달기사 권익 보호 조항이 포함됐다.

2019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배달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정부합동 태스크포스(TF)팀이 만들어져 지난 1월 제정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오는 27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역 배달대행업체에 표준계약서 사용을 권고할 수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국토부는 소화물배송대행업 인증제 시행 시 표준계약서 사용 여부를 인증기준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또 현행법상 지자체는 지역 배달대행업체 실태를 조사할 권한이 없다. 법을 개정해 공정거래위가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거나 지자체의 조사권한을 신설하는 방법밖에 없다. 불공정 계약을 강요한 업체에 대해서도 배달노동자가 직접 신고해야 공정위의 불공정거래 심사가 이뤄져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을’의 입장인 배달노동자가 배달업체를 신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박희원 서울시 공정경제정책팀장은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간 불공정한 계약을 개선하기 위해 2019년 정부가 가맹점 분쟁조정 권한을 지자체로 넘겼듯이 지역 배달대행업체의 불공정한 계약을 막기 위해서는 지자체에도 현장조사권과 처분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