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를 보다 보면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대청소’의 날”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드라마 배경인 출판사의 직원들이 1년에 하루 날 잡고 건물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날인가 보다 생각했지만 거기서 말하는 ‘대청소’란 더 이상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책들을 일괄 정리하는 것을 뜻했다.
나도 얼마 전 ‘대청소’ 비슷한 것을 했다. 해오던 일 중 몇 가지를 ‘대청소’하면서 동시에 폭발적으로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생각이었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멍도 자주 때리게 되고 팔자도 좋아 보인다. 누군가를 만나 상대방이 “뭐 하다 왔어요” 하고 물으면 누워서 생각하다 왔다고 대답했는데 그러면 “아이고, 팔자 좋네” 하고 다들 웃었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나 같은 경우 불가피하게 성찰도 많이 하게 됐다. 너무 해서 이제 성찰이 지겨워질 지경이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걸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내가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가버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을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가령 밥때를 놓친다거나, 운동을 안 한다거나, 잘 안 씻는다거나, 책도 잘 안 읽게 되고….
그러던 중 한 친구의 글을 우연히 보았다. 그가 사는 시골의 한 묵정밭을 갑자기 일구기 시작하는 농부에 대한 관찰기였다. 넓고 휑한 밭 한가운데에서 딱 카펫 정도의 크기만을 일구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그 농부가 밭을 ‘디자인’하는 모습이었단다. 디자인에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으나 농부가 보여준 디자인의 용례가 제일이라면서 그것은 ‘가만 보자…’ 하면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는 적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이 궁리 저 궁리 하면서 차근차근 이뤄지는 것. 그 글을 읽으면서 ‘디자인’이라는 글자를 슬그머니 훔쳐왔다. ‘차근차근’이라는 말도 함께 훔쳐왔다. 나의 요즘을 설명하는 제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