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엔 노마스크? 델타 변이는 방심한 틈을 파고들었다

입력 2021-07-22 04:02 수정 2021-07-22 04:02

“추석에 가족끼리 마스크 벗고 대화 나눌 수 있게 하는 게 정부의 목표입니다.” 코로나19 방역의 최고 책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7일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점차 높아지던 백신 접종률이 ‘추석 노마스크’ 목표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목표는 불과 한 달 만에 달성이 어려워졌다. 지난 7일 신규 확진자가 1212명을 기록하면서 4차 대유행이 시작된 탓이다. 전 세계로 퍼진 델타형(인도)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에 확산된 게 주요 원인이었다. 정부는 델타형 변이 확산세를 안일하게 판단한 데다 때 이른 방역 완화 신호를 보내 위기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해외 델타’ 창궐인데 빗장 푼 K방역

델타형 변이 확산의 반면교사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지난달 7일 기준 영국의 전체 인구 대비 1회 이상 접종자 비율은 60.9%로 비교적 높았다. 영국은 확진자 수가 대폭 줄어들자 마스크 착용 권고를 해제하는 등 봉쇄 조치를 풀었다. 델타형 변이는 방심한 틈을 파고들었다. 지난 5월 19일 3424명이었던 영국의 델타형 변이 확진자는 지난 16일 25만3049명으로 두 달 새 70배 넘게 급증했다.

세계 각국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미국은 방역규제 완화 방침을 거두고 지난달 말부터 백신 접종과 무관하게 실내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백신 모범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델타형 변이가 확산하던 지난달 25일 실내 마스크 착용을 다시 의무화했다. 호주도 지난달 26일 생필품 구매와 생업 등 필수 목적 외에는 외출을 금지하는 봉쇄 조치를 연장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방역 긴장감을 완화하는 조치를 내놨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9일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 이르면 7월부터 단체여행을 허용하겠다”며 ‘백신 인센티브’ 방안을 언급했다. 정부는 같은 달 16일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예고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1일 “외국은 백신 접종자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며 방역을 다시 강화한 반면 우리나라는 방역 완화 기대감에 경각심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20일 발표된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에 정부의 안이했던 판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김 총리는 “그간 의료대응 여력이 확충됐고 예방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코로나19의 위험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면 델타형 변이 위험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지난달 15일 브리핑에서 “영국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백신 2회 접종을 완료하면 델타형 변이 방어 효과가 60~88%로 높다”고 강조했다.

‘방역 해이’ 우려 뭉갠 방역 당국

국내 델타형 변이 확산의 변곡점은 6월 20~26일이었다. 7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겠다는 개편안이 예고된 때와 겹친다. 이때만 해도 델타형 변이의 국내 감염자는 21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다음 주인 6월 27일~7월 3일에는 2배 넘는 52명이 델타형 변이에 감염됐다. 델타형 변이 감염자는 7월 4~10일 250명, 11~17일 719명으로 급증했다. 3주 만에 약 34배 증가한 것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달 16일 브리핑에서 새로운 거리두기 개편안 발표를 예고했다. 이틀 뒤 방대본 관계자는 “접종이 많이 진행됐음에도 코로나19가 여전히 유행하거나 도리어 증가하는 나라가 있는데, 거리두기를 접종 속도에 비해 이르게 이완한 경우”라며 한국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델타형 변이가 전 세계 우세종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던 때에도 정부는 방역 강화보다는 경제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중대본 관계자는 지난달 24일 “델타형 변이 점유율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재편을 연기하면서 서민과 자영업자, 소상공인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을 계속할 필요성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정부는 완화된 거리두기 개편을 하루 앞두고 스탠스를 바꿨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는 지난달 30일 거리두기 완화 시행을 1주일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정부는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의 결정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방역 없이는 경제가 없다”면서 다시 방역의 고삐를 죄는 메시지를 내놨다. 국내 델타형 변이의 검출률이 2~3% 수준에서 9.9%까지 치솟은 직후였다.

중대본은 새 거리두기 최종 단계인 4단계를 수도권에 적용한다는 방침을 지난 9일 발표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델타형 변이는 당장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던 방역 당국의 입장이 열흘 만에 뒤집힌 것이다. 그사이 델타형 변이 검출률(국내 발생)은 7월 11~17일 기준 33.9%까지 올랐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잇따른 방역 완화 메시지와 느슨한 대응이 방역 위기를 초래했다고 입을 모았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는 델타형 변이가 지역사회에 어떻게 퍼졌는지 명확하게 밝히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는 “방역 완화 신호를 주면 20~50대 확진자가 늘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도 정부가 완화 기대감을 조성한 것이 4차 대유행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박세원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