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이 한반도를 강타했던 2018년에도 그리 심각하지 않았던 전력수급 우려가 유독 올해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찜통더위가 심해진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부의 미세먼지 감축 정책과 변덕스러운 날씨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환경변화가 전력수급의 최대 적이 된 것이다.
우선 봄철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석탄화력발전 가동률을 낮추면서 ‘완벽한’ 여름철 전력수급계획 수립이 힘들어졌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미세먼지 대응책이 화근이 됐다. 정부는 겨울철에만 시행하던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적용 기간을 올해부터 11~3월로 확대했다. 석탄화력발전 가동률을 낮춰 봄철 미세먼지 발생량까지 줄이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그만큼 줄어든 전력 공급량을 원전 등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해야 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원전 운용 일정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원전은 원료인 핵연료봉의 위험성을 고려해 발전기 성능·고장 여부 등을 점검하는 ‘계획예방정비’를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그동안은 이 작업 시기를 전력 사용량이 적은 봄·가을에 맞췄다. 그런데 올해는 봄철에 원전 가동률을 높이면서 계획예방정비 시기가 뒤죽박죽됐다. 21일 기준 24기의 원전 중 18기밖에 가동하지 못하게 된 이유다.
예측 불가능한 기상 상황도 원활한 전력수급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산업부는 전력수급계획을 짤 때 기상청의 3개월 날씨 전망을 참고한다. 무더위가 언제쯤 올지, 혹한이 어느 시기에 도래할지를 가늠해 적합한 전력공급량 추정치를 계산해낸다. 그런데 급격한 기후변화로 기상청 날씨 전망이 딱 맞아 떨어지는 일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올해 장마만 해도 예보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이 연출됐다. 예기치 못한 폭염·홍수·혹한이 언제든 전력수급 상황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를 늘린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전문가는 드물다. 태양광·풍력은 날씨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력 사용의 효율성을 높여 총사용량을 줄이는 게 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전문가는 “산업, 건축물 등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식으로 전력 사용량을 감축하는 방식에 정부가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열악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진 ‘블랙 아웃(대정전)’ 우려는 적은 편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올여름 들어 일일 예비전력량이 최저치로 떨어진 것은 지난 13일이다. 예비전력량이 8794㎿까지 급감했다. 단기간에 전력 사용량이 급증한 탓이다. 다만 전력수급경보 단계 중 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는 심각 단계(예비전력량 1000㎿ 미만)에는 한참 못 미친다.
구원투수도 등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1일부터 이달 말까지 원전 3기를 순차적으로 재가동한다. 신월성 1호기와 신고리 3호기, 월성 3호기 등 3기가 공급할 수 있는 전력량은 최대 3100㎿에 달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 공급이 원활하도록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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