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제1야당 대표의 탄생 이후 MZ세대(1980~2000년대생)의 정치 성향, 정치 참여 의지 등에 대한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관련 분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관심의 초점은 중앙 정치 무대의 청년 정치인들에게 주로 맞춰진다. 반면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2030세대 정치인들은 자주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국민일보는 ‘내 가장 가까운 곳부터 바꾸는 정치’를 꿈꾸며 지역구를 다지는 두 명의 1990년생 정치인을 만났다. 이들은 거대담론이 아닌 내 주변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모빌리티 스타트업 타다(TADA)에 다니는 평범한 직원이었던 이대호(31)씨는 지난해 두 개의 사건을 겪은 후 인생의 좌표를 수정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서 성폭력 사건과 타다금지법(11~15인승 승합차를 대여해주면서 운전자까지 알선해주는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를 금지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통과는 대호씨가 다른 인생을 살도록 결심한 배경이 됐다. 별개의 사건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건은 대호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었다.
대호씨는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박 전 시장이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하기까지 약 2년간 서울시 비서실에서 연설 비서관으로 일했다. 박 전 시장에게 성폭력 피해를 본 피해자와도 함께 일했다. 지난해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을 접한 대호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까웠던 동료가 피해를 보는 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에서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건 이후 그는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를 적극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해자를 지지하는 서울시 동료 기자회견 자리에 섰다.
대호씨는 “수평적 조직이라고 생각했던 서울 시정이 표면적으로만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권력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대호씨가 일하던 일터가 타다금지법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타다와 택시의 갈등 구도만 줄곧 부각되다 여야 이견 없이 타다금지법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대호씨는 각 개인의 생계가 달린 절실한 문제가 기성 정치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신산업이 탄생할 때 갈등과 마찰을 중재해야 할 정치는 대호씨 곁에 없었다.
‘내 가장 가까운 곳에 나를 지켜주는 정치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던 대호씨는 두 사건을 계기로 현재 거주 중인 성남시에서 시장으로 출마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모두의 위기 될 기후위기
최지선(31)씨는 주거 문제, 채용 비리, 비싼 등록금 등 청년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2017년 미래당을 창당했고 정치를 시작했다. 지선씨는 “청년문제를 주된 정치 의제로 삼았다는 점만으로 일반 시민들에게는 단순히 ‘진보 성향 정치인’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진보나 보수 등 하나의 이념적 틀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선씨는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때 고향인 서울 송파구 구의원으로 출마해 7%를 득표했다. 기후변화, 기후위기 대응을 전면에 내걸고 거둔 성과였다. 기후변화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2030세대가 그에게 표를 던졌다.
지선씨는 선거 과정 전부를 ‘제로웨이스트’(zero waste·환경 보호를 위해 불필요한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것) 방식으로 치렀다. 이를 위해 선거 홍보물, 현수막, 포스터 등을 전부 친환경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 배포했다. 선거 운동복이었던 셔츠도 서울 중구 황학동 구제 의류숍에서 발품을 팔아 마련했다. 지선씨는 “‘너희가 쓰레기를 조금 줄인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나.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정책은 생활에서의 실천과 함께할 때 설득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지선씨와 동료들에게 기후변화는 일상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위협이다. 그는 “도시 사람들은 최근의 폭염, 지난해 나타났던 긴 장마와 같은 이상 현상을 당장 에어컨을 틀거나 집에만 머무는 등의 방식으로 외면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며 “농부·어부들이나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자신의 삶과 밀접한 문제로 체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선씨는 “이미 섭씨 40도 폭염을 겪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서울의 기온이 40도가 넘어가면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기후변화는 ‘생명을 위협하는 미래’로 다가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상에서 정치를 찾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일상에서 체감하는 문제들부터 주목한다. 대호씨는 이를 위해 지역생활 커뮤니티 당근마켓을 활용했다.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코너에 성남시의 문제점이나 일상에서 겪는 고민을 공유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호응이 따라왔다.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대호씨는 이 중 자신의 연락처를 공개한 시민들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었다. 대호씨는 “내가 가진 두 가지 핵심 정치 의제는 ‘직장 내 괴롭힘’과 ‘신산업 문제’지만 이렇게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로 채워가면 1000개 의제를 가진 정치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선씨는 자신의 정치적 롤모델로 중앙정치의 힘 있는 기성 정치인을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지방의회에서 활동하는 40대 이하 청년 정치인들이 그의 롤모델이 됐다. 입덧이 심한 임신부들에게 약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 중인 신정현(40) 경기도의원이 대표적이다. 입덧 약은 가격이 개당 2000원으로 비싼 데다 건강보험급여 적용 대상도 아니었다. 온전히 개인이 부담해오던 약값이었지만 일종의 저출산을 위한 복지 혜택으로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지선씨는 “내년 대선이 있는 해여서 중앙정치로 사람들의 이목이 많이 집중되겠지만 지방정치에도 젊은 청년들이 생활과 밀착된 신선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