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자영업자를 위한 변명

입력 2021-07-22 04:05 수정 2021-07-22 08:18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이 드디어 길거리로 나왔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경고에도 차량 경적을 울리며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원망하는 목소리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는 절망감이 느껴진다.

금융기관에서 파악할 수 있는 부채 현황만 봐도 자영업자들은 이미 벼랑 끝까지 내몰려 있다. 코로나 발발 이후 1년6개월 사이 자영업자 금융권 빚은 18%(131조8000억원)나 늘었다. 대기업 7%, 중소기업 12.8%, 가계 9.5% 등의 증가율과 비교하면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위기 내내 빚으로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계빚과 부동산시장 불안을 우려해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한국은행이 이를 실행에 옮길 경우 줄도산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준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 이자 부담은 약 5조2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원에 골몰해온 여당 정치인들은 뒤늦게 자영업자 손실보상책을 논한다지만 억지춘향 냄새가 짙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1차 재난지원금을 밀어붙여 싹쓸이승을 거뒀던 여당 프리미엄의 달콤한 기억이 내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길거리에 나온 것은 단순히 금전보상액을 올려받기 위해 떼를 쓰려는 것이 아니다. 일만 생기면 자신들만 희생양으로 삼는 차별과 선입견을 없애는 근본 대책을 바라고 있다.

우리 사회엔 자영업자와 봉급생활자 갈라치기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보장제도와 조세정책만 봐도 자영업자에겐 기울어진 운동장 그 자체다. 소득세 산정 체계는 ‘내는 사람 따로, 혜택 받는 사람 따로’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도록 돼 있다. 일정 소득 이하가 되면 세금 면탈이 되는 면세점 제도가 그것으로 전체 근로소득자 1857만명 중 40%가량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이들 근로자의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4대 보험료의 절반은 사업주 몫이다. 10년 이상 연간 5440달러 이상 소득에 따른 세금만 내면 은퇴 후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연금과 의료 혜택까지 받는 미국의 사회보장제도와 달리 우리나라 사업주들은 직원들 노후연금까지 챙겨줘야 한다. 영업적자가 나도 이를 연체하면 고발 대상이 된다. 법인과 달리 공적 보험료 부담이 자영업자 소득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생계가 달린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행된 중산·서민층 소득 강화 대책은 우리 사회에 자영업자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계기가 됐다. 가시적 경기 회복 성과가 급했던 김대중정부는 유리지갑으로 통칭되는 봉급생활자들과의 조세 형평을 들이대며 신용카드 소득공제 등을 통해 자영업자 세원 색출에 나섰다.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자영업자는 국세청에 고발할 수 있게 하는 등 ‘자영업자=잠재적 조세탈루범’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자 이젠 현금영수증에 더 큰 소득공제 혜택을 주며 자영업자들을 막다른 길로 몰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조세 형평 메스’에 위협당한 자영업자 대부분이 외환위기로 직장에서 쫓겨났던 전직 월급쟁이들이라는 사실이다.

고강도 거리두기 와중에 올해에도 최저임금 인상이 관철돼 영세 자영업자들은 이제 허탈감에 빠져 있다. 최저임금 인상 방안으로 대표되는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이렇다 할 경제적 성과 없이 임기 내내 자영업자 희생을 둘러싼 잡음만 일게 했다. 대권을 꿈꾸는 여야 대선 주자들도 기본소득 도입 등 당장 눈에 보이는 선심성 정책을 둘러싼 경쟁만 치열하게 할 뿐이다. 자영업은 대한민국 서비스산업의 미래다. 코로나 이후까지 내다본 근본적 상생 방안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