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기호(49)가 대한민국예술원의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이 작가는 20일 전화 통화에서 “문단 내부의 일이고 다 아는 분들이기도 해서 고민스럽긴 했지만, 상식과 너무 동떨어진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어서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원에 대해선 문단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비판이 있었지만 공론화가 어려웠던 것 같다”면서 “문단 선배들은 예술원 회원에 대한 질투나 시기로 비판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저는 아직 그럴 경력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국민청원을 올린 이유에 대해선 “소설만 써놓고 빠져나오는 게 부끄러웠다. 책임을 좀 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앞서 격월간 문학잡지 ‘Axt’(악스트) 7·8월 호에 보고서 형식의 단편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사진)를 발표했다. 그는 “예술원의 존재에 대해 문인들도 잘 모르니까 국민들은 더 모르지 않겠나. 국민들이 이 문제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고 했다.
이 작가는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과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 대통령령의 개정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문화예술 예산이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연간 32억원 이상이 예술원에 들어가고 대부분은 100명 회원에게 지급하는 월 180만원의 정액수당으로 쓰이는 것을 언급하며 “상위 1%에게 한 나라의 문화예술 예산이 집중돼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로 신인 예술가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축소·지연되는 상황도 언급했다. 독일 프랑스 미국은 국가가 나서서 예술원 회원에게 정액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 예술원 신입 회원 선출 방식이 예술원 회원의 심사와 인준만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작가는 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선 1954년 설립된 예술원의 역사를 짚어가며 예술원의 설립이 반공문예조직의 국가적 공적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자 권리 주장의 현실화라고 꼬집었다. 예술원은 문학, 미술, 음악, 연극·무용·영화 4분과와 사무국으로 구성돼 있으며 회원 정원은 100명인데 현재 88명이 소속돼 있다. 회원 자격은 ‘예술 경력이 30년 이상이며 예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사람’으로 법에 규정돼 있고 회원의 임기는 평생이며 회원에겐 매달 180만원의 정액수당이 지급된다.
이 작가는 “작년 우리나라 문학 관련 예산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문학 쪽 예산은 정말 미미한데,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예술원에는 32억65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다”며 “2021년 대한민국에 이런 ‘특수예우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국민청원을 시작으로 예술원법 개정 운동에 나설 작정”이라며 “문체부 장관에게 메일도 보내고 1인시위도 하고 뭐든지 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이 작가는 ‘최순덕 성령충만기’ ‘차남들의 세계사’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등을 발표했고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