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브로드웨이 42번가’, 영국의 발레 소재 영화 ‘빌리 엘리어트’, 한국 영화 ‘스윙키즈’의 공통점은 중요한 순간마다 탭댄스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스윙키즈’는 중심 소재 자체가 탭댄스다.
탭댄스는 신발 밑창에 탭(tap)이라는 금속을 붙인 구두를 신고 추는 춤이다. 탭을 타악기처럼 활용해 소리를 내는 게 특징이다. 신발 밑에 나무를 대고 마룻바닥을 두드리는 영국 클록댄스와 아일랜드 지그댄스 등 유럽의 민속춤에 서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흑인 토속 리듬이 어우러져 19세기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현대 탭댑스는 크게 리듬 탭댄스(리듬탭)와 시어터 탭댄스(시어터탭)의 두 스타일로 나뉜다. 리듬탭은 복잡한 리듬 패턴과 발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탭댄스다. 리듬탭 댄서는 음악가 즉 타악기 뮤지션이라고도 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 탭댄스로도 불리는 시어터탭은 뮤지컬에 어울리는 쇼댄스다. 전체적인 안무와 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리듬은 덜 복잡한 편이다. 탭댄스는 시대가 흐르면서 브레이킹댄스로 대표되는 스트리트 댄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탭댄스의 전환점, 탭꾼
탭댄스는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에 한국에 소개됐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60년대 후반부터 대중음악과 사교춤 등을 퇴폐 문화로 규정하고 탄압하면서 탭댄스 역시 쇠퇴했다. 무대 공연으로서 탭댄스는 거의 사라지고 방송과 동호회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2002년 탭꾼 탭댄스 컴퍼니의 등장은 한국 탭댄스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미국에서 처음 탭댄스를 배우고 돌아온 1세대인 김길태 단장이 이끄는 탭꾼 탭댄스 컴퍼니는 다채로운 탭댄스 공연을 선보이는 한편 많은 탭댄서들을 길러내며 탭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김 단장은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춤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독립 프로덕션 PD로 일하던 그는 97년 뉴욕으로 영화 유학을 떠났다가 탭댄스의 매력에 빠졌다. 그의 형이 김길용 와이즈 발레단 단장인 것을 보면 집안에 춤꾼 DNA가 있었던 모양이다.
“탭댄스는 미국 공연예술 및 영화의 역사와 관련이 깊은 춤입니다. 처음엔 취미로 배우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전부가 됐죠.”
5년간 뉴욕에서 탭댄스 뮤지컬 ‘탭 덕스’의 길 스트로밍 등 최고 수준의 댄서에게 배우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2002년 연습실을 차렸다. 정통으로 탭댄스를 공부한 그에게 아마추어부터 프로 춤꾼까지 탭댄스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금은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안무가가 된 김보람과 김설진이 과거 활동했던 것으로 유명한 방송 댄스팀 ‘프렌즈’도 그에게 탭댄스를 배웠다. 영화 ‘스윙키즈’ 안무팀으로 주인공 EXO 도경수의 일부 대역 겸 탭댄스 스승도 그의 제자가 맡았다.
“일제강점기에 탭댄스가 국내에 소개됐지만, 현대 탭댄스와 단절돼 있었습니다. 현재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탭댄서 150여명 가운데 70% 정도가 제게 탭댄스를 배웠다는 점에서 제가 ‘새로운 1세대’라 할 수 있죠.”
무엇보다 그는 국내에 리듬탭이 뿌리내리게 했다. 2004년 봄부터 국내 최초로 콘서트 형식의 탭댄스 공연을 시작하는 등 리듬탭을 활성화했다.
“탭댄스는 재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1930년대 스윙 재즈에서 40년대 비밥 재즈로 넘어가는 시대에 탭댄스가 춤과 음악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후 음악으로 보는 측에서는 ‘탭댄서’가 아니라 ‘태퍼’라 부릅니다.”
앨범을 3장이나 내는 등 뮤지션이기도 한 그가 리듬탭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장르와 협업을 통해 탭댄스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는 “탭댄스는 매우 유연한 춤이다. 발레나 브레이킹 등 다른 장르의 춤에 탭댄스를 섞으면 작품이 훨씬 재밌어진다”고 말했다.
한국 탭댄스의 중심지, 마포
김 단장이 이끄는 탭꾼 댄스 컴퍼니는 2019년부터 마포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을 주최하고 있다. 한국 탭의 현재를 보여주는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은 국내 프로 탭댄서들이 총출동하는 잔치다. 3년째 예술감독을 맡은 김 단장은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홍대 부근은 상암 DMC와 가깝고 음악 밴드들이랑 협업하기 좋기 때문에 탭꾼을 비롯해 많은 탭댄스 컴퍼니가 몰려 있어요. 마포가 한국 탭댄스의 중심지인 셈이죠. 2015년 처음 마포문화재단을 찾아간 이후 꾸준히 탭댄스 페스티벌 개최 기획안을 들이밀었습니다. 아무래도 민간에서 단독으로 하기엔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은 규모였으니까요. 다행히 마포문화재단에서 공감해줘 2019년부터 매년 치르고 있습니다.”
3회째인 올해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은 ‘두드려 리듬을 만들어내는 탭’에 집중한 탭댄스와 ‘춤춘다는 의미의 댄스’에 집중한 탭댄스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기획됐다. 아쉽게도 코로나19 탓에 지난 13~21일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해외에선 완성도 높은 탭댄스 영상이 많아서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국내는 그렇지 못해요.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도 있지만, 이런 배경도 고려해 이번 축제를 일찌감치 온라인 개최로 결정하고 영상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영상 제작에는 김혜수 박해진 등 국내 톱스타들의 CF를 다수 제작한 김건식 감독이 연출로 참여했다. 김 감독은 탭댄스의 백미인 프로 탭댄서들의 현란한 풋 스텝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영상을 만들었다.
13~14일 음악적인 면을 강조한 ‘탭댄스 클럽 스윙46’은 13개 팀이 참가해 리듬탭의 진수를 선보였다. 제목의 ‘스윙46’은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재즈 클럽으로 매주 일요일에는 탭댄스 클럽이 된다. 20~21일 탭댄스, 비보잉, 브레이킹 등 각 장르를 대표할만한 6개 댄스팀이 9개 무대를 선보인 ‘블랙 댄스 버라이어티’는 탭에서 진화한 춤의 역사를 보여줬다. ‘블랙 댄스 버라이어티’는 홍대 인근 당인리발전소 터에 조성된 공원에서 촬영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공개된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 영상은 축제 기간 이후에도 관람할 수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