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내 370여개 오름 가운데 한라산 동쪽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은 특별하다. 약 8000년 전 이곳에서 분출된 용암이 지형을 따라 14㎞ 떨어진 구좌읍 월정리 앞바다로 26.5㎞를 구불구불 흘러가는 동안 10여개의 동굴을 빚어놓았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다. 이 가운데 벵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굴 당처물동굴 등 8개와 성산일출봉, 한라산을 포함한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 2007년 국내 유일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됐다.
거문오름은 숲으로 뒤덮여 검게 보여서 ‘검은오름’으로 불리다가 거문오름으로 바뀌었다. ‘거문’이 신(神)이라는 뜻을 지닌 ‘검’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거문오름은 첫 번째 화산활동으로 능선 길이 4.4㎞, 바닥 지름 1㎞, 높이 456m의 거대한 화산체를 만들었다. 두 번째 분출된 용암이 분화구의 약한 벽면을 부수고 해안 방향으로 흘러내리면서 동굴을 만들었다.
거문오름 전망대에 오르면 거문오름의 웅장한 규모를 실감할 수 있다. 거문오름의 분화구는 직경이 1100m로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크다. 분화구 지역은 아찔하도록 깊고 넓은 원시림을 품고 있다. 왼쪽에는 둥그런 오름의 한쪽 벽면이 없는 말발굽 형상이 뚜렷하다.
북측을 바라보는 전망대에 서면 월정리 해변까지 이어지는 거문오름 용암계의 윤곽이 시야에 잡힌다. 오름을 만나면 돌아가고, 낮은 지형으로 흐른 용암계곡을 따라 자연 그대로의 숲이 넓은 물줄기처럼 바다 방향으로 꿈틀댄다.
거문오름에서 북서쪽으로 약 800m 이동하면 벵뒤굴을 만난다. 벵뒤는 제주어로 ‘넓은 벌판’이다.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가장 처음 형성한 총 길이 4.5㎞의 동굴이다. 인근 거대한 터널 형태의 동굴과 달리 미로형이다. 얕은 동굴로 무너져 내린 지점이 많고,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23일 공개될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아신전’(시즌3)이 촬영된 곳이다.
‘웃산에 있는 산밭’이라는 뜻의 웃산전굴은 벵뒤굴보다 훨씬 규모가 큰 동굴의 상층부가 무너져 내려 형성됐다. 인근 용암교도 비슷한 구조다. 동굴 양쪽이 함몰돼 다리의 형태가 뚜렷하다. 용암교 아래로 내려가 바깥을 올려다보면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북오름굴과 대림굴을 건너뛰고 만장굴로 간다. 마을 사람들은 ‘아주 깊다’는 의미로 ‘만쟁이거머리굴’이라 불렀다. 확인된 길이만 7400여m다.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로 알려진 이곳은 거문오름 용암계에서 여행자에게 개방된 유일한 동굴이다. 개방된 곳의 길이는 1000m. 세계유산축전 기간에 미개방 구간이 소수 인원에 개방된다.
만장굴 비공개 지역에 들어서면 바닥에 V자 계곡이 형성돼 있고, 일부가 무너져 다리가 형성된 곳도 있다. 가장 특이한 것은 밧줄을 꽈배기처럼 꼬아 놓거나 이불을 주름이 생기도록 펼쳐 놓은 듯한 모양의 돌바닥이다. 용암이 흐르다 정체되고 돌아가면서 굳은 결과물이다.
김녕굴은 두 개의 동굴이 위아래로 붙어있는 듯한 다층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상층부와 하층부를 합해 전체 길이가 700m다. 동굴 모양이 구불구불해 큰 구렁이가 살았다는 전설을 품고 있어 ‘김녕사굴’로도 불린다.
김녕굴은 다른 동굴과 달리 입구에 하얀 모래가 쌓여 있다. 인근 바다에서 조개껍데기와 산호 가루 등으로 이뤄진 모래바람의 영향이다. 2000년대 이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가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세계유산축전을 계기로 공개됐다.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용암동굴이지만 내부에 석회동굴의 특성을 지닌 희귀한 동굴이다. 두 동굴은 종유석 석순 등의 훼손 위험 때문에 축전 기간에도 개방되지 않는다.
용암은 월정리 해변에서 바다의 품에 안기면서 굳어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를 펼쳐놓았다. 파호이호이 용암지대 위에 거북등 모양의 주상절리 구조가 이채롭다.
여행메모
거문오름 탐방… 사전 예약·인원 제한
10월 유산축전 기간 비공개 구간 개방
거문오름 탐방… 사전 예약·인원 제한
10월 유산축전 기간 비공개 구간 개방
거문오름은 인터넷과 전화로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탐방할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30분 간격으로 50명씩, 하루 450명으로 제한된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절반으로 줄었다. 매주 화요일과 설날, 추석 당일은 쉰다.
탐방로는 거문오름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정상 코스 1.8㎞(1시간), 분화구 내의 알오름과 역사 유적지를 볼 수 있는 분화구 코스 5.5㎞(2시간 30분), 분화구 능선을 따라 정상을 완주하는 전체 코스 10㎞(3시간 30분)로 구분된다. 자연유산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진행된다. 물을 제외한 음식물과 등산용 스틱, 양산, 우산은 허용되지 않는다.
김녕굴 등 일반에 개방되지 않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동굴 일부가 오는 10월 1~17일 열리는 세계유산축전 기간 소수 인원에 한정 개방된다. 특히 ‘특별탐험대’는 만장굴·김녕굴·벵뒤굴의 비공개 구간을 답사하게 된다. 다음 달 12일부터 온라인으로 선착순 사전 예약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세계유산축전 홈페이지(worldheritag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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