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모조리 모아보았다. 그중엔 당장 버려야 될 정도로 낡은 물건이 있었고 아직 새것과 같아서 한참을 사용해도 좋을 물건이 있었다. 나는 그중 쓸만한 물건들을 모아다가 각각 가격을 책정해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렸다. 곧이어 물건을 구매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에게 차례대로 물건을 팔았다. 그러자 새 노트북을 장만할 정도의 돈이 모였다. 주저하지 않고 나는 새 노트북을 장만했다. 노트북이 급하게 필요했는데 중고거래를 통해 돈을 마련하느라 이틀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비록 시간은 절약하지 못했어도 돈은 절약해 기분이 좋았다. 오래전의 나였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인생에는 절약이라는 게 없었다. 용돈을 받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낭비가 심한 아이였다. 물욕도 강해 당시 유행하던 미니 게임기 ‘다마고치’를 무려 10개나 갖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하루아침에 절약 정신으로 똘똘 뭉치게 된 것은 순전히 TV 덕분이었다.
TV 프로그램 ‘행복주식회사’의 ‘만원의 행복’이라는 코너에 배우 구혜선이 출연하던 날이었다. 그녀는 단돈 1만원으로 1주일간 생활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절약 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독하게만 보일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린 마음에 나도 절약하면 구혜선처럼 아름다워지는 줄 알고 그다음 날부터 무작정 절약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알뜰한 사람으로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굉장히 놀라셨다. 오죽 놀라셨으면 어머니가 아직도 그날을 가끔 회상하실까. 그때 그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나는 빚쟁이가 돼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늘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TV가 나에게는 좋은 습관을 길러준 보물상자다. 이날의 기억이 나를 절약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마냥 나쁘고 해로운 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