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체리가 익었어요”… 식량위기 부르는 기후변화

입력 2021-07-20 00:06
14일(현지시간) 가뭄과 고온 현상으로 수위가 낮아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데라의 헨즈레이 호수 바닥에 소형 보트 한 대가 놓여 있다. 미 서부 지역에서 계속되는 폭염과 가뭄은 도시 지역 식수뿐만 아니라 농촌 방목지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후변화의 재앙이 이상기후를 넘어 글로벌 식량공급 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농축산업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현지시간) 파괴적인 폭염이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 농부들은 농작물이 밭에서 구워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에선 나무에 달린 체리가 계속된 고온에 노출돼 불에 익은 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체리 농장을 운영하는 조셀린 주레빈스키는 “그나마 성한 체리도 가뭄 때문에 속이 차지 않아 파이나 시럽에 쓰지 못하고 전량 주스용으로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주변 지역의 카놀라밭과 밀밭은 누렇게 시들어버려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농작물이 피해를 입자 연쇄적으로 축산업도 위기에 처했다. 가뭄으로 물이 부족한 데다 가축 사료로 줄 농작물이 부족해지면서 사육이 어려워진 것이다. 캐나다 매니토바주 목축업자 안드레 스태플러는 WP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농장 역사에서 우물과 샘이 말라버린 것은 처음”이라며 “(사료 부족으로) 아마 가축의 25~30%를 팔아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설상가상으로 산불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한번 망가지면 회복력이 더딘 가축용 목초지가 소실됐다. 가축에게 먹이를 줄 수 없게 되자 축산업자들은 수십년 동안 혈통을 관리해 최상급의 품질을 유지해 온 가축을 도축하는 게 현재로선 이익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일부 농축산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망가진 작물을 가축에게 먹이고 있다.

지난해 9월 28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글라스 파이어 화재로 캘리스토가에 있는 유명 와이너리 ‘카스텔로 디 아모로사’의 와인병들이 불에 타 재로 남아 있다. 올 여름 폭염과 산불이 기승을 부리며 또다시 와인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AP뉴시스

폭염과 산불로 미국 와인업계도 비상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최고의 와인을 제조하는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와인 생산업자들이 기후변화에 맞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서 일부 재배 농가는 포도에 자외선 차단제를 뿌리고 있으며, 저수지가 말라붙어 수도 공급량이 줄어든 탓에 화장실과 주방에서 사용한 생활폐수를 처리해 물을 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50년 이상 와인을 생산해 온 시릴 채플렛은 “폭염과 가뭄 추세가 악화된다면 아마 폐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파밸리에서는 지난해 가을 산불이 발생해 와인 제조시설이 대거 소실됐다. 게다가 와인의 원료인 카베르네 포도가 산불 연기의 영향으로 맛이 변하는 피해도 발생했다.

폭염으로 북미 서부 태평양 연안의 홍합, 조개, 불가사리 등 바다생물 10억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나다 프레이저밸리대 식품농업연구소의 레노어 뉴먼 소장은 “이번 폭염의 장기적 영향은 알 수 없지만 소비자들은 단기적으로 식료품 가격 급등을 마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만약 이런 상황이 매년 지속되면 식량 생산이 완전히 끝장이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