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인세계선교사대회, 한국교회 선교 역사의 새 장 열었다

입력 2021-07-20 03:07

선교역사가이자 전략가인 랄프 윈터는 한국교회 선교운동의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로 한인세계선교사회(KWMF, Korean World Missionary Fellowship)를 꼽는다. 선교 역사에서 선교사를 보내는 교단과 단체의 연합회는 있지만, 선교사들이 모여 세계적인 연합회를 만드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KWMF는 한국교회 선교운동에 적잖은 의미가 있다. KWMF가 기독교 정신으로 잉태된 한동대에서 ‘제16회 한인세계선교사대회’를 개최한 것은 선교역사에 큰 의미가 있다.

KWMF는 1977년 몇몇 선교사들이 서로 문안을 주고받으며 생겨난 모임이었다. 서로 오갈 수 없는 환경에서 카세트테이프에 찬송과 안부 내용을 녹음해 각국으로 돌려서 서로의 소식을 전하던 모임이었다.

78년 선교사동지회, 82년 한국선교사친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필리핀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했다. 2회 대회는 방콕, 3회 대회를 8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개최했다. 88년 7월 드디어 제1차 세계한인선교대회가 미국 일리노이주 휘튼대 빌리그레이엄센터에서 개최됐다. 한국인의 집단주의적 사고가 만들어낸, 세계 유일의 선교사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선교사들과 제1차 한인세계선교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미주교회는 4년마다 휘튼대 빌리그레이엄센터에서 선교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92년 2차 대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미주 한인교회의 목회자와 평신도가 대거 참석했다.

이는 선교역사 가운데 독특한 사건이다. 미주에 이민을 간 1세들은 교회를 세우고 정착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것이 일반적인 아메리칸 드림, 이민 역사였다. 그런데 이들이 세계선교를 부르짖고 대규모 선교대회를 개최해 이민 1세와 1.5세대를 선교사로 동원해 파송하는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선교사들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던 이민교회의 후원을 받아 참석함으로 미주 한인교회와 연결됐다. 이후 제법 많은 선교후원이 미주 한인교회에서 일어나게 돼 일거양득의 역할을 했다.

1~2차 한인세계선교대회를 통해 세계한인선교사회는 네트워크를 확장하게 됐고, 제3차 한인세계선교대회는 참가자가 3500여명으로 확대됐다. 대회에 초청받은 선교사들은 전체 대회가 열리기 전 시카고 노스팍대에서 모여 선교사들만의 시간을 가졌다.

빌리그레이엄센터에서 열린 선교대회는 미주 전지역에서 모여들었으나 대회 전 주말에 시카고 시내와 가까운 지역에서 모인 선교사대회의 저녁 집회에 지역교회들이 더 많이 참여했다. 선교사들이 주일 시카고 지역교회를 방문하고 지역교회 선교운동을 확장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2016년 처음으로 미국 서부지역으로 대회 장소가 옮겨졌으나 대회가 거듭될수록 그 숫자는 증가해 1000여명을 웃도는 참석의 열기를 보였다. 4년마다 가장 많은 선교사가 함께 자리에 모이는 기회를 통해 KWMF는 명실공히 전 세계에 나간 한인 선교사들의 관계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1995년부터 대회 중간인 2년 차에는 선교사지도력개발회의를 개최하고 선교사 스스로 지도력을 개발하는 기회를 가졌다.

KWMF가 2020년 한국에서 선교사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은 파송받은 본국과 교회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1년 연기된 이번 대회는 과거 휘튼대 캠퍼스만 빌려서 대회를 치렀던 것과 비교할 때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한동대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학문의 전당과 현장 선교사들의 산학 협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또 160명의 자원봉사자와 만남은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선교세대 계승의 발걸음을 구체적으로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코로나 상황 속 열린 대회였던 만큼 자유롭게 만나 토론하는 기회가 제한됐다는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유튜브를 통해 연인원 3만명 넘는 성도가 접속했고, 어떻게 선교를 감당할 것인지 성찰하고 통찰했다. 그래서 제16회 한인세계선교사대회는 한국교회 선교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용중(기독교한인세계선교협의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