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법인세율을 둘러싼 논쟁이 또다시 가열되고 있다. 논쟁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여당이다. 일관된 법인세율 인상 기조를 유지해왔던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소속 대권 주자들이 법인세율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박용진 의원은 법인세와 소득세 동시 감세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낙연 전 대표는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해소를 위한 법인세율 차등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법인세율 인하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법인세율 인상·인하 정반대 내용을 담은 의원 입법안이 모두 발의돼있다. 양쪽 주장의 근거는 일견 탄탄해 보인다. 인하를 주장하는 쪽은 코로나19로 경영 상황이 악화된 기업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반대편은 경기침체로 세수는 줄고, 지출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법인세율을 낮추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법인세 감세 효과 설왕설래
법인세율 인하론의 핵심 근거는 기업의 세금 부담을 낮춰 투자·고용 확대와 민간 소비 진작을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세로 세수가 일시 감소하더라도, 경제 성장과 시장 확대를 통해 더 큰 세수 확보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법인세의 이런 효과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먼저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는 논문을 통해 “법인세율을 3%포인트 인하할 경우 국내 총생산(GDP)이 0.48%~0.59%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법인세율 변화가 기업 투자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상장기업의 법인세율이 1.0% 포인트 인하되면 투자율은 0.2% 포인트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 증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들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던 이명박정부 사례를 반례로 든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당시 기업이 절감한 법인세는 총 37조 원을 넘었지만 국내 4대 그룹의 투자 지출액은 오히려 줄었다”며 “반면 이들의 사내유보금은 88조에서 94조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법인세 감세가 고용과 투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정부도 해당 인과관계가 꼭 맞는다고는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법인세율이 투자에 유의미한 효과를 미치는지 아닌지는 국가와 시기 등 케이스마다 결과가 다르다”고 말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2019년 국정감사에서 법인세율과 국내 투자 간 상관관계가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정부는 대신 기업의 투자·고용을 촉진할 만한 각종 조세특례 제도를 다양하게 운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조세특례 제도를 통해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유도하고 있고, 세율 자체를 손대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이 전 대표가 주장하는 ‘법인세율 지방 차등 적용’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법인세는 국세인데, 세율 자체를 지역별로 달리 운영하는 것은 국세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스위스·이스라엘 등 지방 차등을 적용하는 소수 국가는 연방제 같은 특수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방소재 기업에 대한 법인세 부담 경감 조치들이 많다”며 “시행 중인 지방세 중심 감면을 강화하거나 일부 세액 공제를 확대하는 방향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율 높이면 무조건 세수 늘까
재원 마련 차원에서 법인세율 인상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실제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조세수입 확대 차원에서 법인세율 인상 등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율을 높인다고 해서 세수가 꼭 늘어나는 건 아니다. 김성현 성균관대 교수 등이 쓴 논문에 따르면 수출 기업의 법인세율이 2.0% 포인트 인상될 경우 총 세수는 단기에 1.0%가량 늘었다가 장기적으로는 0.22%가량 줄어든다. 한국경제연구원도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법인세율을 올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6개국 중 3개국의 세수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세율뿐 아니라 세원도 중요한 변수인데, 법인의 영업이익 등은 경제 상황에 따라 변동 폭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법인세율을 높일 여력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미 문재인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린 바 있고, 한국 법인세율은 OECD 회원국 37개국 중 10번째로 높다. 최근 글로벌 디지털세·탄소세 도입으로 기업 세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시기적으로도 법인세율 인상은 쉽지 않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법인세율을) 올리기도 어렵고, 내리기도 어렵다”며 “대단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법인세제 개편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과표 구간이 유일하게 4단계로, 가장 많다. 미국·영국·일본 등 32개 국가는 단일 세율 체계를 택했고,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2개국은 2개 구간, 룩셈부르크는 3개 구간이다. 대기업 세수 의존도가 유독 높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2019년 기준 상위 10% 기업이 부담한 법인세 비중은 전체의 71.2%나 됐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 법인도 49.0%였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조세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스토리텔링 경제]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