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vs 건강하지 않은 가정’ 이념적 프레임에 갇힌 여가부

입력 2021-07-20 03:04
바른인권여성연합이 주관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적 고찰 및 대응방안’ 세미나 참석자들이 지난 3월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정지영(왼쪽 세 번째) 교수는 변화하는 가정의 형태에 맞춘 정부의 선제 대응을 주문했다. 국민일보DB

건강가정기본법은 2004년 제정돼 2005년 1월 1일 시행된 가족 정책 관련 법안 중 하나이자 최초의 법안이다. 이후 우리나라의 가족 정책 관련 법안은 ‘가족 친화 사회 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2012.5.2. 시행)과 ‘다문화가족 지원법’(2014.1.1. 시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2014.1.14. 시행), ‘한부모가족지원법’(2014.1.21. 시행),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2014.2.14. 시행)’,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2014.3.18. 시행), ‘아이돌봄 지원법(2014.3.24. 시행)’,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2015.3.25. 시행) 등 8개의 법안이 계속 제정되거나 일부 개정돼 시행되고 있다.

이들 법안에는 가족 친화 사회 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과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과 같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모든 가정과 국민이 법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법안도 있고, 다문화가족 지원법이나 한부모가족지원법과 같이 선별적 지원이 필요한 특정 가족 형태를 지원하는 법안도 있다.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와 복지 사각지대의 틈새를 좁힐 선별적 복지 관련된 법이 동시에 필요하다. 또한 문제가 발생하기 전, 선제적 차원의 복지 정책도 필요하고 사후 치료적 차원에서의 복지 정책도 필요하다. 즉 보편적이며 선제적인 기본법과 취약 가족을 위한 선별적 법안이 모두 공존하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하다.

현재 전 세계적 복지정책의 기조는 북유럽식의 보편적이며 선제적인 복지정책이 선진 복지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건강가정기본법은 이처럼 특정한 가족 형태를 지원하기 위한 선별적이며 사후적인 가족 정책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다수의 가정생활 공동체의 선제적 건강성을 지향하기 위한 목적의 법이다. 따라서 ‘건강한’ 대(對)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을 동원해 건강하지 않은 가정, 즉, 한부모 가족이나 장애인 가족이 차별성을 느낀다는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보편적이며 선제적인 건강가정기본법의 제정 목적과 지향성을 폄훼하는 것이다.

또한 건강가정기본법 외에 8개의 가족 관련 법안을 모두 아우르는 정책이 바로 우리나라의 가족정책임에도 불구하고, 행정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의 말을 그대로 언급하면서 ‘건강가정기본법’이란 이름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고자 한다.

‘건강한’ 대 ‘건강하지 않은’의 관점에서 ‘건강가정기본법’만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꾼다면, 나머지 8개 법안은 우리나라 가족 정책 법안이 아닌가. 이렇듯 언어적 말장난에 좌지우지되는 여성가족부의 태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부처로서 매우 근시안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 6일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성가족부 차관은 ‘가족’과 ‘가정’이란 용어가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사람들 즉, 1인 가구를 차별하므로 ‘가족’과 ‘가정’의 개념을 가족 법안에서 삭제하자는 주장을 했다. 전국적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1인 가구는 ‘가족’을 형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가정’기본법을 적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가족’과 ‘가정’의 개념 차이를 제대로 모르는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족’(家族)은 대체로 혈연 혼인 입양 등으로 관계돼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지칭해 인적 구성원 관계에 한정하는 개념이다. 반면 ‘가정’(家庭)은 의식주 활동을 공유하는 생활 공동체로서 공동체 구성원 간에 정서적 지지가 이뤄지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공동생활이 이뤄지는 물리적 ‘공간’을 뜻한다. 즉 가정은 하나의 ‘집단’이면서 동시에 ‘장소’를 뜻하고, 따라서 혈연관계로 이뤄지기도 하고 비혈연 관계로도 이뤄질 수 있는 사회 집단이다. 그러므로 1인 가구는 ‘가족’이 될 수 없지만 ‘가정’은 꾸릴 수 있으며, 가족정책기본법의 대상은 될 수 없으나 건강가정기본법의 대상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법 명칭을 바꾸지 못해서 서비스 제공에 한계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 제공에 여성가족부가 정책적으로 소홀해 온 것은 아닌가 싶다.

이미 선진국에서 존재하고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한, 개인주의적 삶을 가장 중요시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효율적일 때는 선택적으로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세뮤니티족’(semmunity族)과 같은 공동체 가구는 ‘가족’이 아닌데 가족정책기본법으로 어떻게 가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릇 정부는 모든 국민을 위한 공무를 집행하는 곳이므로 공평하고 공정해야 하며 미래를 살펴봐야 하는데, 지금의 여성가족부는 특정 성차별 이념에 한정돼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예견한 선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에 행정 부처로서의 정체성에 국민의 의문이 증가하고 있다.

정지영 여주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