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요청에 따라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활용한 선수촌 응원 현수막을 철거한 가운데,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경기장 내 욱일기 응원을 제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은 정치적 선전물이고 욱일기는 아니다’는 식의 ‘내로남불’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18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욱일기 디자인은 일본에서 널리 사용돼 왔고 정치적인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며 “경기장 반입 금지 물품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도쿄조직위의 이 같은 입장은 대한체육회가 ‘이순신 장군 현수막’을 철거한 바로 다음 날 나왔다. 체육회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명언인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신에겐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고,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를 본뜬 ‘신에게는 아직 5000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란 현수막을 선수촌 한국선수단 거주층에 걸었다가 17일 철거했다.
일본 극우세력 등이 시비를 걸고 IOC가 철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과 극우정당에선 현수막을 두고 ‘반일의 상징’을 앞세워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트집 잡았다. 일부 극우세력은 한국 거주동 앞에서 욱일기를 흔들며 시위를 벌였다.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조직위 위원장도 현수막에 대해 “(올림픽에선)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걸 삼가야 한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IOC도 현수막이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전을 금지하는 올림픽헌장 50조 위반이라며 철거를 요청했다. 체육회는 욱일기 사용에도 동일하게 올림픽헌장 50조를 적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현수막을 내렸다.
그런데도 도쿄조직위는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을 막을 의지가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도쿄조직위 관계자는 “IOC와 대한체육회의 협의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욱일기 취급 방침에 변동은 없다”고 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관중이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경기장 내부에서 흔든다면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올림픽 경기는 대부분 무관중으로 치러지지만, 도쿄도 바깥의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관중을 받는다.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이 문제 된 사례는 많았다. 2017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선 수원 삼성과 맞붙은 가와사키 프론탈레 서포터스가 관중석에 욱일기를 내걸었다. 2019년 일본에서 열린 럭비월드컵에선 욱일기 머리띠 응원이 펼쳐졌고, 일본인뿐 아니라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동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같은 해 US오픈에서도 니시코리 케이(일본)의 경기 때 경기장 내 욱일기가 펼쳐진 사례가 있다. 이 중 AFC 외에는 욱일기 응원을 제재하지 않았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일본은 국제적 이벤트를 앞두고 이순신 장군 현수막 문구와 함께 임진왜란이란 침략의 역사가 회자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며 “IOC가 전범기 제재를 약속했다고 해도 정확한 이행이 뒤따를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IOC가 욱일기에 대해서도 현수막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하겠다고 했기에 현재로선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만약 대회 도중 욱일기가 펼쳐진다면 적극적으로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세상에 없던 올림픽]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