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내비게이션처럼 의심 부위 콕 집어내… 절개 없는 폐암 진단 시대

입력 2021-07-20 04:03
전자기 장치로 정확한 위치 유도
최소 침습으로 고통·합병증 줄어
암 확인 땐 즉각 수술로 전환 가능

1998년부터 20년 넘게 부동의 사망률 1위인 폐암은 의심되면 반드시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 예외적으로 아주 초기의 폐암이 의심되는 경우 진단과 치료를 겸해 바로 수술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악성 종양인지, 맞다면 조직형은 뭔지 파악하기 위해 먼저 조직검사를 필요로 한다. 폐암은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 방침이나 경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조덕곤 교수(왼쪽)가 폐암 진단을 위한 전자기 유도 내비게이션 기관지경 시술을 하고 있다. 비침습적 방법으로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줄이고 진단 및 수술의 정확도를 높인게 특징이다. 성빈센트병원 제공

이모(78)씨는 최근 국가건강검진 CT검사에서 왼쪽 위 폐 중심부에 수상한 결절(덩어리)을 발견했다. 집 근처 병원을 찾은 이씨는 해당 결절이 암인지 염증인지 애매하고 하필 위치가 기존 조직검사 방식(세침흡인검사 혹은 기관지내시경)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조직검사를 위해선 가슴을 열고 폐 일부를 떼내야 한다는 것. 암이 아닐 수도 있는 상황에서 바로 폐를 절제해야 한다는 소리에 겁이 덜컥 났다.

지금까지의 폐암 진단 방식은 이처럼 환자에게 고통과 불편을 동반한다. 등이나 옆구리에서 긴 바늘을 폐까지 찔러 조직을 채취하는 세침흡인검사는 출혈은 물론 폐조직 손상으로 인한 기흉(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참)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조직을 적절히 얻어내지 못하면 다시 검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환자가 느끼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암 의심 부위가 폐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면 기관지내시경으로 접근이 어렵다. 암이 의심되는 ‘간유리음영 폐결절(뿌옇게 유리를 갈아서 뿌린 것 같은 모양의 덩어리)’은 종양처럼 뭉쳐져 있지 않고 푸석푸석해 조직검사가 어려울 뿐 아니라 바늘을 찔러 넣어도 조직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씨처럼 가슴 절개에 대해 불안해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환자의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인 최신 폐암 진단 검사법이 몇해 전 도입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자기 유도 내비게이션 기관지경술(ENB)’로 불리는 이 방식은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충남대병원 등 소수의 의료기관에서만 시도되고 있다.

ENB 방식은 이렇다. 먼저 CT촬영으로 얻은 영상정보를 바탕으로 환자의 폐를 3차원(D)이미지로 구현하고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해 2~3㎜의 카테터(가는 관)가 폐암 의심 부위를 정확히 찾도록 하는 시술이다. 입으로 삽입된 기관지내시경에서 나온 카테터가 직접 좁은 폐기도 내부까지 들어가 진단에 필요한 최적의 부위와 크기의 조직을 채취할 수 있게 한다.

전자기 유도 내비게이션 기관지경술(ENB) 시술 모식도.

내비게이션이 도로망을 정확히 파악해 자동차를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안내하는 원리와 같이 암이 의심되는 병변의 위치에 최단·최선의 경로로 접근하도록 돕는 것이다. 환자의 등 밑에 깔린 전자기 유도장치와 가슴에 부착된 추적센서(위성 역할)가 GPS처럼 정확한 위치를 따라갈 수 있도록 카테터를 추적한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폐암센터장인 조덕곤 흉부외과 교수는 19일 “좁은 폐기도에 도달해야 할 때는 카테터 속에서 또 다른 미세 카테터가 나와 목적지까지 충분히 접근 가능하다. 카테터는 일자형 혹은 돼지꼬리처럼 꼬불꼬불한 것이 있어 폐 내부의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위치에 있는 의심 부위도 정확한 조직검사가 가능하다. 또 최소 침습적인 시술인 만큼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나 합병증을 크게 줄인 게 장점이다.

ENB는 암세포가 있는 병변에 표식도 가능하다. 카테터를 통해 생체에 무해한 푸른색 잉크를 주입해 암 부위를 표시할 수 있는 것. 이는 암 수술 부위를 명확히 하거나 암 부위에 방사선이 정확하게 쪼일 수 있도록 돕는다. 조 교수는 “암 크기가 작고 임파선 전이가 안된 초기 암인 경우 수술실에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이 때 ENB의 병변 표식 기능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2019년 대한흉부종양외과학회에 ENB를 이용한 수술 분석 논문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44명 환자의 51병변에 대해 폐 수술 전 표식 시 90% 이상의 성공률을 보였고 4명의 환자는 수술 전 조직검사를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ENB는 크기 1㎝ 미만의 초기 폐암, 간유리음영의 폐결절이나 폐암 위치가 애매해 기존 방법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경우, 전이암 등의 진단에 유용하다. 다른 장기의 암이 폐에 전이된 경우에는 암 크기가 작고 폐의 여러 곳에 발생하기도 하는데, ENB는 각 암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표식이 가능하고 해당 암이 전이암인지 원발 폐암인지 감별하는데도 효과적이다.

조 교수는 “특히 ENB는 수술실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조직검사상 암으로 확인되면 즉각 수술로 전환해 절제술을 시행할 수 있다”며 “마취 한 번으로 진단과 치료를 원스톱으로 할 수 있어 환자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또 “도입 당시에는 비보험으로 비용 부담이 있었는데, 단계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관지가 막혀 기관지내시경을 넣을 수 없거나 전신마취의 부담의 큰 환자는 ENB 시술이 어렵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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