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RM 효과?… 백화점에서 그림 감상·구매하는 2030 ‘미린이’들

입력 2021-07-18 20:47
‘주린이(주식+어린이)’에 이어 ‘미린이(미술+어린이)’가 등장했다. MZ세대는 미술을 어렵게 접근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미술품은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자 때로는 재테크 수단이다. 같은 MZ세대 연예인에 의해 미술 대중화가 이뤄진 영향도 있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BTS RM을 따라 전시회를 찾는 발길이 많아지자, ‘RM이 다녀간 전시회’라는 홍보 문구가 붙을 정도다. 이에 유통업계도 매장 안에 미술 작품을 품으며 미린이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1층에 전시중인 ‘원 마스터피스-나의 두번째 아트컬렉션’展(전) 박서보의 ‘묘법’.

백화점 업계는 30년 이상의 갤러리 운영 노하우를 살려 ‘아트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비대면 시대에 소비자들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나오게끔 만드는 게 최대 과제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곳곳을 미술품 전시 공간이자 판매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쇼핑하며 미술품까지 감상할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18일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1층엔 명품 매장들 사이로 박서보의 ‘묘법’이 전시돼있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도 적혀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에스컬레이터 앞, 엘리베이터 앞 등 매장 곳곳에 작품이 전시돼있어, 의도하지 않아도 쇼핑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상이 가능한 구조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구매도 가능하다.

롯데백화점은 기존 전시 중심으로 운영했던 오프라인 갤러리를 상시 판매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제 막 미술 컬렉션의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미린이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는 걸 돕는다는 콘셉트다. 전시장에는 아트 어드바이저가 상주해 작품에 대한 설명과 맞춤형 아트 컨설팅으로 구매를 돕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 미술품 컬렉터들이 4050대가 주였다면 최근에는 2030대 ‘뉴비(초보자)’ 컬렉터들의 진입이 많아지고 있다. 뉴비 컬렉터들의 경우 통상 1억원 선까지 구매한다고 한다.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면서 관람객들이 대폭 줄어들었다”면서도 “순수하게 작품에 관심이 많은 백화점 비이용 고객층까지 확대됐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1층에 전시중인 '해피팝(HAPPY POP)'展 존 버거맨의 '런던'.

신세계백화점 역시 본점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까지 해외 유명 팝아티스트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해피 팝(HAPPY POP)’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명품 매장을 새롭게 리뉴얼한 강남점은 회화, 사진, 오브제, 조각 작품 등 120여점을 가득 채운 ‘아트스페이스’를 선보였다. 계단을 오르는 길목과 엘리베이터 앞, VIP 라운지, 매장 안까지 곳곳에 작품이 전시돼 매장 전체가 갤러리였다. 작품 옆에는 설명과 함께 구매 가격까지 같이 안내하고 있다. 수십만원대 저렴한 작품부터 수억원대 작품까지 다양하다. 현재 최고가는 2억원대의 마크 스완슨의 조각품이다.

고객들 반응 역시 뜨겁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원로작가 김창열, 중견작가 하태임, 최영욱, 차규선, 신진작가 김선우 작품 등이 활발히 팔리고 있고, 최근에는 데이빗 호크니와 알렉스 카츠, 줄리안 오피 등 해외 작가들의 작품도 인기”라며 “오픈 이후 지난달까지 300여점이 넘게 팔렸고 작품 문의도 꾸준하다”고 말했다.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3층에 전시중인 육족 보행 로봇 ‘프로브(The Probe)’를 고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아예 매장의 절반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핫플레이스’를 만들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하우스 도산’이 그렇다. 하우스 도산은 팝업스토어를 제외한 총 3개 층 중 절반 가까이를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매장에 들어서도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1층 라운지엔 프레데릭 헤이만과 협업했다는 거대 설치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젠틀몬스터는 “기존 리테일 공간의 1층이 가지는 고정적 개념과 잔상을 바꾸기 위해 기능과 효율을 포기하고 새로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안내했다.

3층에는 거대 육족 보행 로봇이 등장했다. 로봇이 움직이는 동안 손님들은 그 옆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젠틀몬스터를 방문한 한 20대 여성 고객은 “안경 매장이라기보다는 전시회장에 안경이 같이 진열돼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특별히 구매할 생각이 없어도 일단 와서 구경해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