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고성능 브랜드 N모델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소형 해치백 i20 N부터 국민차 아반떼 N까지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현대차가 N모델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의문이 뒤따른다. N모델은 많이 팔리지도 않는 데다 국내 인지도도 해외 만큼이나 높지 않아서다.
사실 N은 당장 눈앞의 매출 증대만을 바라보고 출범한 브랜드가 아니다. 현대차는 N을 통해 보급형 자동차 기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프리미엄 해외 시장 공략은 물론 자사 라인업 전체의 품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모터스포츠 고객층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의도도 바탕에 깔려있다.
N은 현대차 연구개발센터인 남양연구소와 현대차 테스트센터가 입주한 독일 뉘르부르크링의 영문 머리글자 N에서 따왔다. 현대차는 2015년 9월 고성능 브랜드 N을 처음 공식화했지만 2012년 12월부터 이미 독일 알체나우에서 현대모터스스포츠법인을 운영해왔다. 현대차는 이곳에서 유럽 전략 차종인 1세대 i20을 기반으로 경주용 차량을 개발했다.
현대차는 2014년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 참가하기 시작해 2019년과 2020년 시즌 제조사 부문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출시된 i30 N과 벨로스터 N은 2018년 월드투어링카대회(WTCR)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올해는 WTCR에서 아반떼 N(현지명 엘란트라 N)이 3라운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터스포츠 ‘불모지’인 국내에서 N의 인지도는 낮다. 아반떼 N이 고성능 부품을 달고 높은 가성비로 출시됐지만 ‘아무리 빨라도 아반떼’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N모델은 돈이 되는 사업도 아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약 4만대가 팔렸는데 유럽에만 편중됐다. 국내 올해 상반기 N모델(코나, 아반떼 제외) 판매량은 해외 판매량까지 합쳐 5000대 안팎에 머문다. 올 상반기 현대차 전체 매출의 0.24% 수준이다.
그런데도 현대차가 N에 집착하는 데는 복잡한 속내가 있다. 최근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와 함께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현대차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N을 활용하고자 한다. N모델이 국제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상위권에 자리하는 것만으로 높은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다. 국내 모터스포츠계의 대부 곽창재 앨빈모건 실장은 15일 “20년 전만 해도 도전이었던 WRC가 이제는 현대차가 해외에서 정상급 수준의 기술력을 평가받는 무대가 됐다”고 했다.
고성능 기술 개발은 일반 양산차의 품질 개선으로도 이어진다. 현대차의 라인업은 일반 양산차, N 라인, 고성능 N, 프로젝트 RM(Racing midship) 콘셉트카, 모터스포츠 경주차로 분류된다. 현대차가 참가하는 모터스포츠 대회는 모두 각 사 양산차를 바탕으로 개발된 경주차끼리 성능 대결을 하는 곳이다. N의 기술 향상은 곧 양산차 품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객의 차종 선택 폭도 넓힐 수 있다. 현대차가 일반 차량에 N 부품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패키지를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개인의 취향이 다양화되면서 고성능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은 “전기차 플랫폼 E-GMP에서 N 특화 개발을 해 뉘르부르크링을 달린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라며 자사 전기차에도 N이 적용될 것임을 시사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