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0대 청년 7년 감금·가스라이팅 피해 호소… 경찰, 불기소 송치

입력 2021-07-16 04:03
피해자 A씨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빼곡히 적은 깜지(왼쪽)와 30분마다 벽시계와 함께 자신의 얼굴을 찍어 보낸 사진들. A씨 측 제공

20대 청년이 직장 동료 부부에게 7년간 감금돼 가혹 행위를 당하는 등 학대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은 정신 질환이 없는 성인 남성이기 때문에 감금이 아니라 자발적인 동거였다고 본 것으로 전해졌다. 심리적 지배 상태인 ‘가스라이팅’ 범죄는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인천의 한 경찰서는 A씨를 감금하고 폭행한 혐의로 B씨 부부를 수사했지만 지난 2월 불기소 의견으로 인천지검에 송치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직접 증거가 없고 협박 등 혐의 일부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다.

A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학대 피해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A씨가 사생활 문제로 약점을 잡히자 B씨 부부가 “모두 네가 잘못해 벌어진 일”이라며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가스라이팅은 친밀한 사이에서 죄책감을 자극하며 점차 정신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이라며 “죄책감을 크게 느낄수록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A씨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빼곡히 적은 깜지들. A씨 측 제공

A씨 측은 “시킨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가혹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사진을 보면 ‘오늘 해야 할 집안일’ 목록이 A4용지에 적혀 있었다. B씨 부부가 일명 ‘깜지’(종이에 내용을 빼곡히 적는 것) 방식으로 글을 적게 했다는 것이다.

눈 부근 봉합수술, 고환 파열 치료 등 A씨가 상해 치료를 받은 내역은 7년간 최소 6회다. 엽기적인 고문도 자행됐다고 한다. A씨 측은 “욕조에 눕힌 뒤 물고문을 하고, 종이컵에 소변을 받아 마시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폭행에 의한 상해인지, 운동하다 입은 상해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피해자 A씨가 30분마다 벽시계와 함께 자신의 얼굴을 찍어 보낸 사진들. A씨 측 제공

인지 능력에 문제가 없는 성인 남성이지만, 정신적으로 지배 상태에 놓여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A씨 측 주장이다. A씨의 휴대전화에는 30분 단위로 벽시계와 A씨 얼굴이 함께 나오도록 촬영된 사진이 수백 장 담겨 있었다. B씨 부부가 A씨를 감시하기 위해 사진 전송을 강요했다고 한다.

B씨가 A씨에게 보낸 카톡 내용. "고생했고 힘들었던 시간을 갚겠다"고 적혀있다. A씨 측 제공

B씨 부부는 A씨가 탈출하자 지난해 2월 사과하며 합의를 요구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고통 받은 것 모두 보상을 해주겠다.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는 “함께 살면서 잘해주지 못한 게 많아서 한 말”이라며 범행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의 주장을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신 질환이 없고 정상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던 20대 남성이기 때문에 언제든 탈출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가스라이팅 피해 치료 경험이 있는 정신과 전문의들 역시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자의였다면 이후 정신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심리 상담을 통해 재경험(과거의 부정적 경험을 다시 떠올려 경험하는 일)에 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중증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