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동안 행하신 사역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힙니다.(요 20:30~31) 요한복음 7대 표적 중 본문에 기록된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첫 표적이며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사건입니다.
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기쁨을 상징입니다. 금욕적인 세례요한의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을 신랑과 혼인 잔치의 손님으로 비유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마 22:1 이하)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예수님과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혼인 잔치 한가운데 있습니다. 포도주는 시편 104편 15절에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포도주는 마음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성찬과 세례의 의미도 갖습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고 기쁨의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 즉, 이 세상에 새 생명을 위해 부어질 새 언약의 피인 것입니다. 오직 참 기쁨인 예수의 피가 우리 안에 있을 때만 충만한 기쁨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요 15:11)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자연적이며 세상적인 기쁨이 그렇듯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문구는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언젠가는 떨어지고 결국은 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만든 포도주가 떨어진 이 위기 상황에서 ‘예수의 어머니’는 아들을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 하시며 어머니의 요구를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따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만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분이지만 그분의 뜻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참 포도나무의 피가 세상의 생명을 위해 피 흘리기까지는 인간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대답은 공손하면서도 분명했던 것입니다.
둘째, 새 포도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율법 아래에 있는 한 사건입니다. 90~130ℓ의 물을 담을 수 있는 돌 항아리 여섯 개가 이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 물은 율법이 정한 ‘결례 의식’에 쓰일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세상 한복판에 죄로 물들어 있는 이스라엘을 거룩하고 깨끗한 민족으로 보존시킬 많은 의식의 일부인 것입니다. 결례 의식은 소극적 행동입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없애지만 충만한 기쁨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이 줄 수 없는 것을 넘치게 주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진정 새로운 것 즉, 하나님 나라의 ‘새 포도주’(막 2:22)를 맛보게 하는 기적의 현장인 것입니다.
셋째, 새 포도주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손님들은 그 위기와 해결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예수님 어머니 말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는 하인들과 제자들만이 그 기적의 비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올바른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영광이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말씀을 겸손히 따르는 자에게 ‘새 포도주’의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병욱 목사(서울 서머나교회)
◇이병욱 목사는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전임간사로 사역했으며, 총신대학원,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서울 내수동교회, 홍성교회, 두레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서머나교회에서 담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