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는 법무부의 피의사실 공표 엄단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국민 기본권인 알권리,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과의 조화·균형이 모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공개 가능한 사건을 제한하고 공보관을 통하지 않은 유출을 감찰한다는 내용 등은 오히려 검찰이 자의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환경을 낳는다는 지적이 대표적이었다. 모든 사건에 대해 일관적으로 적용될 원칙이겠느냐는 의문,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까지 아우르는 통일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뒤따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4일 “객관성과 공정성은 항상 투명성과 맞물려 있다”며 “재판이 공개되듯, 수사 역시 꼭 밀행성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최대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로 제한하려는 내용은 대부분 여권 인사들과 관련한 것인데 국민의 알권리는 공인의 프라이버시(사적 권리)에 우선한다”고 덧붙였다.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이 규정대로라면 과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슬롯머신 사건 등의 진실이 발견될 수 있었겠는지 자문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대검찰청 간부와 기자 간 대화를 통해 표면화됐다. 정관계의 구조적 비리가 드러난 1993년 슬롯머신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언론 보도가 동력이 됐다. 김 변호사는 “과도한 ‘흘리기’는 분명 개선돼야 하겠지만 ‘너희는 이것까지만 알아’ 하는 식이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선택적이지 않은 일관적 적용이 향후의 큰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의 사건에 대해서도 피의사실 공표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2017년 검찰과 특별검사의 국정농단 사태 수사,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등이 진행될 때에는 정부가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지금처럼 적극 제기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검찰뿐 아니라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가짜 수산업자’ 로비 의혹 등 경찰 수사 사안에서도 피의사실 유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방해하는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는 검찰을 통하든 경찰을 통하든 다를 바가 없다”며 “훈령을 넘어 대통령령이나 총리령으로 기준의 통일성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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