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환경 만족도↑ 교통사고↓… ‘보행자 우선도로’가 답이다

입력 2021-07-15 04:05
2019년 ‘보행자 우선도로’시범사업 대상지인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4길의 사업 전후 모습. 복잡하던 거리(왼쪽)가 보행자위주 도로로 포장된 뒤 질서정연해졌다. 행정안전부 제공

14일 서울 영등포역 지하쇼핑센터 앞. 3번 출구로 나와 곧장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먹자골목이 기다랗게 뻗어 있었다. 예전엔 자동차와 오토바이, 상점을 오가는 행인들이 뒤엉켜 북적이던 이곳에서 눈에 띄는 건 빨강·노랑·연두·회색이 보도 모양으로 칠해진 도로였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운전자들은 보도·차도 구분이 없는 도로를 차도라 생각해 보행자를 우선 배려한다는 인식이 없다”며 “도로에 보도 느낌을 주면 운전자는 도로와 다른 공간으로 인식해 속도를 낮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넛지 효과다. 접촉사고가 잦았던 교차로 일부 구간에는 ‘교차로 알리미’를 설치했다. 전방 20m 부근에서 차량이 접근하면 알리미가 불을 깜빡여 주변에 주의를 준다.

행정안전부는 영등포역 먹자골목 일대를 ‘보행자 우선도로’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보행자와 차량이 모두 이용하되, 보행자의 안전·편의를 우선한 폭 10m 미만의 도로다. 열악한 이면도로 보행여건 개선을 위해 도입됐다. 정부는 이밖에 서울 마포구·중랑구 등에 보행자 우선도로 시범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45곳을 지원한다.

주민 만족도나 사업효과는 긍정적이었다. 행안부가 2019년 시범사업을 진행한 6곳을 대상으로 보행환경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평균 만족도는 42.8%(5.65점→8.07점) 상승했다. 서울시가 2013~2017년 자체 시행한 사업에서는 시행 전후로 교통사고가 28.8%(205건→146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 우선도로 확대 배경에는 취약한 보행자 안전이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중은 평균 39%로 가장 높았다. 2020년에는 35.5%(3081명 중 1093명)로 줄었지만,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13~2016년 전체 보행 사망자의 75%가 보·차 혼용도로에서 발생했는데, 특히 폭 9m 미만의 이면도로나 골목길 등에서 44.4%가 사망했다.

보행자보다 차를 우선하는 현행법도 문제다. 도로교통법 제8조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서 보행자는 차마(車馬)와 마주보는 방향의 길 가장자리 구역으로만 통행하도록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보행자에 대해서도 과실이 있다고 본다.

이에 관련법 개정이 진행 중이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면도로 등 보행량이 많고 교통사고 발생 우려가 높은 구간을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하고, 보행자 통행을 차량 통행에 우선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면도로 등에서의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보행 친화적 포장, 안전표지, 차량속도 제한 등 안전시설을 확충해갈 계획이다.

전해철 행안부 장관은 “보행자 사고 비율이 높은 이면도로에서 차보다 사람에게 통행우선권을 부여하는 보행자 우선도로 도입은 한국 교통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난해 보행안전법 개정에 따라 국가 차원의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 기본계획을 올해 처음으로 수립하게 됐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보행 정책·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