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백신 망설이는 20%…포용 전략 필요하다

입력 2021-07-15 04:07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와 가족 관련 행정업무를 하는 A씨는 어렸을 때 독감 예방 주사를 맞다 이상반응을 겪었다. 그래서 접종에 대한 공포가 있고 백신에 대한 신뢰도 낮다. 이 때문에 코로나 백신 접종 대상 통보를 받은 다음 날부터 공포와 불만, 반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병원에도 접종을 미루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A씨는 고민 끝에 결국 퇴사를 택했다. 백신 접종이 그에게는 마치 목숨을 내놓는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A씨처럼 코로나 백신 접종 순서가 와도 맞지 않거나 주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 거부나 망설임(vaccine hesitancy) 심리가 많이 퍼져 있다. 지난 4월 진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18세 이상 성인의 약 20%는 백신 접종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감염 차단과 집단면역 형성을 위해선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과 함께 백신 접종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많은 전문가와 방역 당국이 설파해도 그들에게는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백신 접종 망설임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백신 서비스가 충분히 가능한데도 접종을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2019년에는 세계 건강 10대 위협 중 하나로 지목했다. 한국에서는 백신 거부 운동이나 활동의 여파가 미미하지만 미국 일부 주와 프랑스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홍역의 재유행을 초래할 정도로 큰 우려를 낳기도 했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꺼리는 사람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 강력한 안티 백신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백신을 수용하지만 찜찜한 사람부터 백신 접종을 그냥 지연하고 싶은 사람, 거부하지만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는 사람, 분명한 목적을 갖고 반대하는 사람까지 여러 유형이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 매튜 혼지 교수팀이 24개국 5000여명을 대상으로 백신에 적극 반대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연구한 적 있다. 연구팀은 바늘·주사 공포가 있거나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저항하거나 사회의 개인 통제·위계 침범에 불만이 있거나 음모론적 사고를 가진 부류 등 4가지 그룹을 도출해 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과학적 지식이 전부 모자라고 계몽이 부족한가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과학적 교육만으로 이들의 간극을 좁히는 계획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각 그룹에 대한 접근은 다른 동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백신이 남아도는 미국에선 요즘 백신 접종 망설임 현상이 만연해 골치를 썩고 있다. 백신을 거부하거나 조금 더 기다려보겠다고 답한 비율이 40%에 달했다. 백신 접종률이 주춤한 틈을 타고 인도발 델타 변이가 확산돼 감소하던 확진자가 증가세로 돌아서는 위기를 맞았다. 신규 확진자의 99.7%가 백신 미접종자로 확인된다.

이에 미국 당국과 연구기관들이 ‘백신 망설임층’에 대한 구체적 성향 분석에 들어갔다. 백신 거부 혹은 주저하는 사람들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고 그 위치에 맞게 도움을 줘서 포용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과 30~40대, 농촌 거주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의 백신 거부나 주저 비율이 높게 나왔다고 한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파고를 맞고 있는 한국도 백신 접종률을 신속하게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현재로선 접종을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있는 백신을 어떻게 잘 활용해 빨리 맞힐지가 중요하지만 향후 미국처럼 백신 망설임이나 거부가 사회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20% 백신 망설임층에 대해 이유나 동기를 면밀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설득 전략으로 적극 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