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한 달 만에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불쑥 꺼낸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론에 이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합의 번복 소동이 겹치면서 당 안팎에서 이 대표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변화를 상징했던 30대·원외·0선의 3대 요소가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변곡점에 놓였다.
이 대표는 13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합의 논란과 관련해 “사실관계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확정적 합의라기보다 일종의 정치적 가이드라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소상공인 지원 확대와 소비진작성 지원 최소화라는 두 가지 당론을 바탕으로 협상에 임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투톱’인 김기현 원내대표도 “합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팩트가 아니어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옹호했다.
양당대표는 전날 만찬 회동 이후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했다고 알렸다. 사전 교감도 없던 발표에 조해진·윤희숙 의원은 “제왕적 당대표”라고 비난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실망”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즉각 “소상공인 보상 후 남는 재원으로 대상 범위 확대를 검토하자는 것”이라 수습했다.
하지만 전국민 지급 자체가 선별 지급이라는 당론과 배치돼 반발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여당이 단독처리로 밀어붙이면 ‘입법독주’라 규정짓던 야당의 전략에도 역행한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당이 줄곧 추경을 지적하며 소수 야당으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그려졌는데 덜컥 합의해 그동안 문제 제기가 다 딴지 거는 느낌이 됐다”고 했다.
전당대회부터 리스크로 언급됐던 ‘30대·0선·원외’ 요소가 이 대표의 발목을 잡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정치력에 넘어갔다는 평가도 있다. 야당에 부는 새 바람에 ‘꼰대당’ 이미지를 걱정한 민주당 입장에서는 경륜 부족을 들어 역공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에 목소리를 높인 모습에도 우려가 나온다. 당대표 입장이 당론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토론 패널로 자유롭게 의견을 내던 시절과는 말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부처 폐지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사안인 만큼 당내 논의가 필수적이다. 조수진 최고위원은 여가부 폐지 논쟁을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분열의 정치’로 규정하며 혹평했다.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외교적 자리에서 밝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대표는 지난 12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의 접견 자리에서 홍콩 민주화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기대한다고 언급해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블룸버그 인터뷰에서도 중국의 자치권 억압에 우려를 전했다.
한 중진 의원은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내부 분열이 계속될 경우 대선 정국의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당대표는 스피커나 아니라 매니저다. 당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역할을 팽개쳐는 안된다”고 쓴소리했다.
다만 2030세대 지지를 끌어올리는 등 이 대표가 점수를 많이 따놓은 덕에 당분간 당내 지지가 이어질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우리가 젊은 층의 눈길을 받아본 게 10년 만에 처음”이라며 “(합의 내용은) 소상공인에게 지급하면 남는 재원이 없음을 고려한 절묘한 책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