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이 올해(8720원)보다 5.1% 오른 9160원으로 결정되면서 문재인정부 내에서의 최저임금 심의는 모두 끝났다. ‘1만원 달성’ 공약에서 출발한 최저임금 심의는 전강후약(前强後弱) 널뛰기식 인상률로 노사 모두에 고통만 안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제도가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될 때 저임금 노동자와 소상공인에게 얼마나 큰 혼란을 일으키는지 확인된 사례라고 지적한다.
13일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공익위원 주도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 5.1% 인상안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내고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며 “저임금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희망 고문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내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은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에 부족하다”며 “코로나19 피해 책임을 저임금 노동자 생명줄인 최저임금에 전가해선 안 된다”고 날을 세웠다.
경영계 불만도 최고조에 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내년 최저임금을 5.1% 인상하는 것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물론 기업인들을 한계로 내모는 것”이라며 “실업난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내년 인상률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향후 10일 이내에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재심의해 달라는 취지의 이의신청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은 적용 연도 기준으로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16.4%, 10.9%를 기록했다가 지난해(2.9%)와 올해(1.5%)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포함한 연평균 인상률은 7.2%로 박근혜정부 때보다 0.2% 포인트 낮다. 연평균 인상률만 보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현 정부 내에서 이뤄진 최저임금 심의 결과는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과 혼란을 키우는 등 실패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결국 공수표에 그친 문재인정부의 ‘1만원 달성’ 공약이 노사 갈등을 부추기는 불쏘시개 역할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최저임금 1만원은 경제적·과학적 근거도 없이 만들어진 금액이었다”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보니 정작 중요한 노동생산성 향상은 뒷전이 되고 1만원 달성에만 매몰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정권 초 두 자릿수 인상률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타격을 입었고 일자리도 많이 감소했다”며 “이후 1~2%대 최저 수준 인상률은 노동계를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소득이 상승하는 성과 지표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상 정부가 결정할 권한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목표를 제시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저임금은 노사, 공익위원만 결정할 수 있는데 정부가 1만원을 무슨 수로 올리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박 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는 전문가로 구성하고 무엇보다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최저임금이 대선 공약 등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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