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내게 필요한 슬픔

입력 2021-07-14 04:06

슬프거나 괴로운 감정은 누구나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인 나에게 두 감정은 새로운 시를 써내게 만드는 촉진제와 같아 평생 놓치지 않으려 애쓰게 되는 감정이다. 나는 행복하면 시를 쓰지 못한다. 누군가는 내게 행복한 감정이 담긴 시도 써 달라면서 그건 매우 아름다울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부정한다. 진정으로 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 행복과 평온이 아니다.

올해 유독 시가 써지지 않았다. 시를 쓰려고 부다페스트까지 왔는데 생각보다 시가 더디게 써져서 나는 나를 진단해야 했다. 진단해본 결과 나에게 슬프고 괴로운 감정이 어느새 사라지고 행복하고 평온한 감정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오랜 기간 슬픔으로 시를 술술 써내던 내가 갑자기 왜 행복하고 평온해졌을까. 그건 복권에 당첨돼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큰돈을 갖게 돼서도 아니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게 돼서도 아니었다.

난 올해 초부터 SNS 활동을 중단했다.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는 데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SNS에 매일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지인들의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접하곤 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업무적인 소식을 드문드문 올리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누구의 소식도 접하지 않고 나의 사생활도 알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유행에 뒤처지게 되고 지인들의 소식도 전혀 모르게 됐지만 신기하게도 그간 고질병 같던 불안증과 스트레스가 사라지게 됐다.

나와 비슷한 사례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SNS를 끊어내자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겪게 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업무 효율이 높아진 사람도 있었으며 우울증이 사라진 사람도 있었다. SNS가 사라진 세상은 이야말로 평온함 그 자체이다. 이제 나는 너무 행복하고 평온해 써지지 않는 시만 고민하면 된다. 다시 짝사랑을 시작해볼까. 내게 짝사랑보다 괴롭고 슬프며 아름다운 건 없으니까 말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