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김형준(51) 전 부장검사의 또 다른 뇌물 의혹에 대한 재수사에 나섰다. 최근 ‘가짜 수산업자’의 검사 로비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공수처가 과거 스폰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라 주목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 6일 김 전 부장검사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된 사건을 정식으로 입건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사건과 관련해서는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16년 10월 중 고교 동창 김모(51)씨의 수사 관련 편의를 봐주면서 수년간 금품 및 향응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심은 김 전 부장검사가 김씨로부터 송금 받은 1500만원 등을 뇌물로 보고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계좌로 받은 돈은 빌린 돈으로 보인다”며 향응 접대 998만원만 유죄로 판단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번에 공수처가 입건한 사건은 대검찰청이 2016년 무혐의로 본 부분이다. 김 전 부장검사가 2016년 3~9월 검찰 출신 박모(51) 변호사로부터 3차례에 걸쳐 4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김 전 부장검사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으로 재직했다가 2016년 1월 예금보험공사로 파견을 갔다. 박 변호사는 당시 서울남부지검에서 피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몸 담았던 일선 청에서 피의자로 수사 중인 인물과 금전 거래를 한 것이다.
당시 둘 사이 금전 거래는 확인됐으나 당사자들은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다. 대검은 금전거래의 대가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전이라 금품 거래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었다. 대검은 대신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해 해임 징계를 청구할 때 해당 사안을 징계 사유에 포함했다. 부적절한 금전거래긴 했지만 뇌물로 보긴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이후 김씨는 2019년 10월 김 전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를 각각 뇌물수수 및 뇌물공여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는 지난해 10월 말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검찰은 지난달 중순 사건을 공수처로 넘겼다.
5년 만에 재수사에 나선 공수처가 뇌물 혐의를 인정할 경우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될 전망이다. 다만 당시 국민적 의혹이 제기돼 대검이 전방위 수사를 벌였다는 점에서 새로 뇌물 혐의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자백이나 물증이 없는 이상 금전 거래만으로 뇌물죄를 적용하기는 어려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현재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직권남용 의혹 등 굵직한 사건들을 수사 중이다. 1호 수사였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건도 아직 주요 피의자의 소환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법조계 일각에선 수사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공수처가 검찰을 겨눈 사건의 입건 숫자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나성원 허경구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