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기본소득 실험 중… 소외계층 특효, 전국민은 글쎄

입력 2021-07-13 00:04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경제상황이 급속하게 나빠지자 인종과 소득수준, 가정 상황 등 대상자를 정해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성과를 측정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쥐어진 기본소득은 의식주와 정신건강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하지만 실험적인 사례로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美 17개 지역 ‘기본소득 실험 중’

12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팬데믹 시작 이후 미국 17개 지역에서 특정 계층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보장소득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스탠퍼드대 기본소득연구소에 따르면 서부에서는 캘리포니아주의 9개 도시가 보장소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거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동부에서는 여러 주에 걸쳐 8개 도시가 흑인이나 이주민 여성, 양육가정 등에 수당을 지급하고 효과를 측정하고 있다.

도시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보편적기본소득(UBI)이 아닌 보장소득(Guaranteed Income)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두 개념은 비슷해 보이지만 시민 모두가 받는 UBI와 달리 보장소득은 특정 계층에만 지급되는 차이가 있다. 보장소득이 좁은 의미의 기본소득인 셈이다.

보장소득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추진하는 도시 11곳의 시장들은 지난해 6월 ‘보장소득포럼(MGI)’을 만들어 실험을 지속하기로 했다. 최근 MGI 가입도시는 57곳으로 늘었다. MGI는 “백인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흑인 여성들은 66센트, 히스패닉 여성들은 58센트 이하를 손에 쥔다”면서 “복지를 보완하고 인종·성별 형평성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정 계층에 수당을 주는 이유로 팬데믹 당시 유례없는 경제적 불황이 닥친 점이 꼽힌다. 미 노동부가 지난 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3.5% 감소해 1950년대 이후 가장 크게 감소했다. 특히 소비자지출은 3.9%나 급락해 세계 대공황 시기인 1932년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4월 실업자는 전년 대비 4배나 증가한 2311만여명까지 치솟았다.

로이터통신은 “소비자지출이 줄면서 유연한 고용계약을 한 여성과 유색인종, 저임금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미 노동통계국(BLS) 보고서도 “백인이 두 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한 것은 팬데믹 초기 3개월뿐이었지만 흑인 실업률은 줄곧 20% 내외였다”고 평가했다.

일부 계층엔 특효약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한 도시들은 최근 1년 정도의 중간평가 결과 대상자들의 의식주가 일부 개선되고 정규직 직업을 갖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받아들었다.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카운티는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위탁가정 출신 만 24세 미만 청년 72명을 대상으로 매달 1000달러(113만3000원)를 지급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은 기본소득으로 세금을 내거나 금융 멘토링을 받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데이브 코르테즈 시장은 “위탁가정 청소년들은 기댈 곳 없이 사회에 나왔다는 사실과 팬데믹이 겹쳐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 “적은 돈으로 청년들을 사회에 안전하게 정착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카운티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차상위계층 55가정에 매월 500달러(57만4250원) 정도를 지급한다. 500달러는 미국 소득기준 하위 40% 가정의 팬데믹 기간 평균소득 감소분 400달러에 100달러를 더 얹은 것이다. 예산은 시 예산과 잭 도시 트위터 CEO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레바 스토니 시장은 “500달러로 차상위계층 가정은 안전한 느낌을 받았다”면서 “단 500달러로 최악의 위기를 비켜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 도시가 실험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2019년 캘리포니아 스톡턴카운티에서 진행한 SEED 프로그램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스톡턴은 SEED 프로그램을 위해 크리스 휴즈 페이스북 공동창업자의 후원을 받아 2019년 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비정규직 저소득층 주민 125명에게 월 500달러를 지급한 뒤 변화를 측정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특정 계층에 지급된 기본소득이 대상자들을 변화시켰다고 발표했다. 2019년 2월부터 기본소득을 받은 주민들의 정규직 고용률은 28%에서 40%로 늘었다. 부채를 갚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52%에서 62%로 증가했다. 정신건강지표 역시 유의미한 변화를 보였다. 연구팀은 “월 500달러는 비정규직 저소득층 주민에게 일상을 회복하는 지렛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우려들

여러 형태로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은 꾸준히 제기되던 단점을 완벽히 해소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지급하는 데다 액수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권위자인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대 교수는 “기본소득으로 최소 1인당 GDP의 10~15%가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급돼야 할 액수는 월 680~1020달러(78만4425~117만1410원) 수준이다. 이를 전 국민 대상 기준 미국 인구가 3억명이라고 가정하면 매월 2040억 달러(230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나태할 가능성’도 완전히 반증하지 못했다. 맷 조왈론스키 샌디에이고대 교수는 “보장소득 실험은 1년 또는 2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 진행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다”면서 “기본소득이 장기간 지급될 경우 노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찬성론자들의 소망은 증명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윤태 임송수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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