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권사님이 쾌척한 1억 127곳 마을 주민 생명지킴이 됐다

입력 2021-07-13 03:01
손자들과 충남 당진 삼봉교회에서 포즈를 취한 이효순 권사. 김성선 담임목사는 이 권사에 대해 “오랫동안 교회 로비 청소를 도맡으셨다”며 “항상 조용하게 교회를 섬겼던 분”이라고 했다. 삼봉교회 제공

이효순(65) 권사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건 눅진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년 전 여름이었다. 암 진단을 받고 40년 넘게 출석한 충남 당진의 삼봉교회부터 찾아간 이 권사는 김성선(61) 담임목사를 만나 많은 말을 쏟아냈다.

“목사님, 암 판정을 받았는데 어떻게 회개를 해야 할까요.” “그동안 제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해주세요.” “제가 떠난 뒤 남편과 애들 잘 살펴주세요.”

그러면서 이 권사는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엔 1000만원권 수표가 자그마치 10장이나 들어 있었다. 김 목사는 최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삼봉교회에 부임한 게 1992년입니다. 권사님과 보낸 세월이 30년 가까이 되는 셈이죠. 권사님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가슴이 아프더군요. 권사님은 봉투를 내놓으면서 남편도, 자식들도 모르게 모은 돈이라고 했어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써 달라고 당부하셨죠. 하지만 너무 큰 금액이어서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김 목사는 1억원을 장애인이나 소아암 환자를 위해 쓸까 고민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하염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 헌금을 받고 1년 6개월이 흐른 뒤에야 떠오른 것이 자동 심장충격기인 제세동기를 보급하는 일이었다. 삼봉교회는 나이가 지긋한 성도가 많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4년 전에 제세동기를 갖춰 놓고 있었다. 그러나 충청도의 시골교회들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교회가 제세동기를 구비하고 있으면 교인만이 아니라 시골 교회 주변에 사는 주민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목사는 결국 개당 200만원 수준인 제세동기를 대량 구매했다. 충청 지역 교회 127곳에 제세동기를 전달했다. 김 목사는 “제세동기는 시골교회라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장비”라며 “권사님의 헌금을 의미 있는 일에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권사는 헌금 1억원을 내놓은 것을 비밀에 부쳐달라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선행은 알음알음 알려졌고,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충청연회는 지난 4월 그에게 사애리시 선교사상을 주었다. 김 목사는 “권사님은 상을 받는 것도 처음엔 고사하셨다”고 전했다.

“권사님은 현재 경기도 수원에 사는 딸과 함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권사님께 1억원을 제세동기를 보급하는 일에 쓰겠다고 했을 땐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목사님 뜻대로 마음껏 하시라고, 그 돈을 좋은 일에 써 주시기만 하면 된다고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